스페인

가톨릭 부부왕과 콜롬버스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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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공각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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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합스부르크에 관련된 글 쓰다가 필 받아서 적어 봅니다.


카스티야-레온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큰 세력이 이면서, 경제적인 면에서는 아라곤 왕국에 비해 경제적인 부분이 많이 부족 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대륙과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하기에는 멀리 있었고, 실크로드와 인도의 무역이 단절 되면서 카스티야-레온 왕국은 더욱  힘들어 졌습니다. 

그에 비해 아라곤 왕국은 지중해의 해상권을 지배하며 무역으로 인한 경제 소실은 크게 미미한 편이 이었습니다.  

이에 이사벨라 여왕은 어떻게든 카스티야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대책을 세우고 있었죠. 이때 콜롬버스가 이사벨라 여왕의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콜롬버스는 유럽의 여러 나라의 군주들에게 신항로 개척에 내용을 설파 하고 후원을 부탁하면서 돌아다녔지만 다들 터무니 없는 말이라며 거절했죠.  

콜롬버스는 아라곤 연합 왕국의 페르디난트 2세에게 신항로 개척에 대한 후원의 서류는 보냈지만 페르디난트 2세는 읽어볼 가치도 없다며 서류를 버렸습니다.  

그것을 본 이사벨라 여왕은 콜롬버스를 자신 궁전으로 불러오게 되고 후원을 통해 신항로 개척을 위한 콜롬버스의 원정대가 세비야에서 출발하게 되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식민 제국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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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버스의 첫 번째 여행) 


이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상황은 역전됩니다. 식민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부는 축적한 카스티야-레온 왕국에 비해 이미 유럽 대륙의 중요 무역지는 지중해 무역이 아닌 저지대와 북부 이탈리아로 이동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슬람 세력인 오스만과 오스만의 후원을 받은 해적들의 노략질로 인한 피해가 막대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공화국의 쇠퇴에 따른 무역 감소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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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로사(붉은 수염)하이르 앗딘 그는 오스만의 후원을 얻고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을 약탈 했다.) 


여기서 우리는 큰 의문점을 가지게 될 것 입니다. 같은 연합 왕국의 공동 군주인데 왜 식민지에 대한 권리는 오직 카스티야-레온 왕국만 가지게 된 거지? 

바로 이사벨라 여왕이 연합 왕국의 왕으로써 후원 한 것이 아니라 카스티야-레온 왕국의 여왕으로써 후원 한 것이기 때문 입니다.(이사벨라 여왕의 큰 그림)  

이후 카스티야 왕국을 중심으로 아라곤 왕국은 천천히 흡수되어 1715년 부르봉 가문의 펠리페 5세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죠. 그리고 현재 까지도 이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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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콜롬버스의 무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망했는데 당시 콜롬버스는 "스페인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며 말 했고 그의 사망 이후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 시키면서 그의 유언대로 4개의 동상으로 관을 받치고 있다. 앞의 두 사람은 그를 후원한 왕(카스티야와 포르투갈) 뒤에서 고개 숙이고 짊어지고 있는 두 왕은 후원 지원을 거절한 두 왕이다.)


(콜롬버스가 찾은 아메리카는 신대륙이 아닌 원주민이 살고 있는 구대륙 이였으며, 그는 죽을 때 까지 아메리카가 인도로 알고 있었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최초이자 최악의 학살자 였으며, 유럽의 열강들에 의해 지옥을 맛 봐야 했다. 정작 미국에서는 콜롬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을 기념해 "콜롬버스의 날"를 지정하고 퍼레이드 행사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메리카 나라에서는 콜롬버스에 대한 비판이 많고, 콜롬버스의 고향인 이탈리아(제노바)에서는 최악의 학살자로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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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ㅇㅇ님의 댓글

  • ㅇㅇ
  • 작성일
콜럼버스가 이탈리아에서 그런취급인지 몰랐네요.스페인에서는 국경일이고 콜럼버스 동상도 많던데요.람블라스 거리끝자락에 있는 콜럼버스동상탑은 세계적인 명소이죠.

대공각하님의 댓글

  • 대공각하
  • 작성일
콜롬버스 시신을 스페인으로 가져 올 때도 논란 엄청 많았어요. 그런데도 이송한 이유는 딱 하나죠. 스페인의 전성기를 열어준 인물이라서 그래요. 남미의 여러 국가들은 콜롬버스의 날(10월 14일)을 원주민의 저항의 날로 바꾼 나라들도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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