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경제를 장악했던 화교 부자의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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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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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와 결탁했던 ‘림소양’
몇 년 전에 작고한 인도네시아의 살림그룹을 창업했던 스드노 살림 림소양은 복청시 해구진省福淸市海口鎭에서 태어났다. 고향 이름이 증명하듯이 해구진은 복청을 지나는 용강이 바다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그는 여기서 1916년에 태어나 2012년에 싱가포르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다.
한 때는 세계 10대 부호의 순위에 들기도 했고 인도네시아를 넘어 동남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인 살림그룹을 만든 사람이었지만 중국도 인도네시아도 아닌 싱가포르에서 영광과 오욕으로 점철된 인생을 마감했다.
그는 1935년 부친이 세상을 뜬 후, 1938년 봄에 그는 숙부가 있던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숙부의 가게 일을 도우다가 자신의 사업을 시작한 그는 1952년 자카르타로 이주를 하여 부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부의 가장 큰 원천은 밀가루 사업과 밀수입의 독점이었다. 바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연고를 이용하여 정부로부터 다양한 사업에서 독점권을 얻었고 독점이윤을 쌓아 땅 집고 헤엄치기로 자산을 축적했다.
1990년대 전반 인도네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이전 살림그룹은 동남아시아 최대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그의 임씨 왕국은 다각화된 집단으로 방적, 화학, 전자, 임업, 어업, 항공, 보험, 부동산. 금융. 보석, 호텔, 의료기기, 철강업, 시멘트, 자동차 등 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는 수하르토의 도움으로 성장했다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야 했고 그가 인도네시아어를 잘 못 구사한다는데도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에 대해 어려서 중국어를 배웠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어가 유창할 수 없다고 변명을 했고 인도네시아에서 수십 년을 살았고 수만 명의 인도네시아인 에게 일자리를 주고 있다고 항변했다.
1997년 인도네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다음해 5월 수하르토에 물러나자 온 국민은 림소양의 시대도 끝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의 은행인 BCA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했다. 그 시기 자카르타의 그의 집 담벼락에는 인도네시아인들이 써 갈긴 “수하르토의 개”라는 문구가 그에 대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시각을 보여 주었다. 위기 이후 그는 싱가포르에 거주했고 병원에서 2012년 세상을 떠났다. 어려서 가난했으나 그는 부를 쌓았고 천수를 누렸던 것이다.
한국 재벌도 똑같이 문어발로 사업하고 독재정권이랑 정경유착 오져도 차이점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 기술에 엄청 투자함ㅇㅇ 화교가 만약에 한국에서 사업했으면 삼성처럼 10년 적자 봐가면서 반도체 투자 현대처럼 자동차 기술에 투자 절대 안 했을걸
재일교포가 회장인 롯데, 초코파이파는 오리온 그룹 화교회장 생각을 해봐라 한국에서 부를 쌓기만 하지 절대 자기가 적자 봐가면서 뭘 하진 않음
ㅇㅇ님의 댓글
김옥균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