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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대만낭인의 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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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ㄴㅇㄹ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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臺灣浪人



대만낭인은 일제시기 샤먼․푸저우 등지에서 활동하던

대만인 무뢰배를 지칭하는 말로, 일본의 비호 하에

자신의 특수한 지위를 이용하여 각종 불법 업종에

종사하거나 심지어 강도․납치․살인 등의 범죄를 저질은 집단이었다.


당초 대만에서 불법 행위를 일삼던 부랑자나

죄를 짓고 법망을 피해 중국으로 밀항한 자들이 주축이었는데,

그 수가 샤먼에 1300-1400명, 푸저우에 200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 후 대만총독부의 대만 내 범죄조직 와해공작에 따라

더 많은 조직원과 부랑배들이 일본의 ‘묵인’ 하에

사먼 등지로 건너옴으로써 그 세력이 확대되었고,

대만에서의 출신 조직에 따라 서로 대립하던 이들은

일본영사관의 조정과 승인 하에 하문에서

악명 높은 ‘십팔대가(十八大哥)’를 결성하였다.


‘십팔대가’ 중에는 대만에서 온 부랑배로 샤먼에서 온갖 악행을 저질러

일본당국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아 죄를 사면 받은 경우(예컨대 林滾)도 있고,

샤먼 현지의 부랑배로 일본국적(즉 臺灣籍)을 취득하여

‘십팔대가’의 일원이 된 경우(예컨대 吳通周)도 있었다.


이들은 각각 구역을 나누어 수하를 거느리고

도박장․아편굴․妓樓․무도장 개설과 고리대업,

밀수, 아편․헤로인 판매, 무기 판매 등의 사업을 경영하였다.


‘십팔대가’ 일당 외에도 각종 불법행위로 현지 주민들을 괴롭힌

대만낭인도 적지 않았으니, 王昌盛같은 이는 무기와 아편 판매로

閩南지역 토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일본영사의 신임을 얻어

특무공작에 협조한 대가로 중일전쟁 시기 汕頭市 정부 고문을 맡기도 하였다.


한편 이권을 둘러싸고 대만낭인과 하문 현지세력 간에

臺紀사건(1913) ․中臺無賴漢 사건(1916)․臺吳사건(1923)․臺探사건(1924) 등

충돌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영사관이 개입하여 시비곡직을 불문하고

대만낭인을 비호함으로써 대만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중국인에게 심어주었다.


더욱이 일본정부는 대만낭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 ‘무력’을

배일․항일운동을 진압하는데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샤먼영사를 지낸 藤田榮助의 회고에 따르면 격렬해지는 배일운동에

대처하기 위해 미리 대만낭인으로 하여금 ‘商業保衛團’을 조직케 하여

배일단체 지도자를 협박하거나 무기를 들고 거리시위를 하게 함으로써

중국학생의 배일시위를 무력화시키기도 하였다.


심지어 대만군사령부는 화남으로 출병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대만 폭력단원 출신에게 푸저우에서 일본인을 살해토록 지시하기도 하였다.


※) 일본군이 푸저우와 샤먼에 출병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이노기(李爐己)에게 지시하여 1932년 1월 복주의 일본인소학교 교사인

미토(水戶) 일가를 살해한 사건으로, 범인 이노기는

일본영사관에 의해 대만으로 압송되었다가 얼마 후 풀려났다.


한편 대만낭인도 1938년 일본군의 샤먼 상륙 시 향도를 맡았을 뿐 아니라

시내 곳곳의 건물옥상에 일본 국기를 내걸어 내응을 하였고,

그 대가로 샤먼특별시 정부 성립 후 財政局 主計과장․公賣局 국장․

지방법원 원장․檢察署 검사장 등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이처럼 대만낭인들은 일본의 비호 하에 호가호위하며

중국인은 멸시하고 괴롭혔을 뿐 아니라 그 주구가 되어

중국침략에 앞장섬으로써 중국인의 악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행위와 존재는 대만인 전체의 이미지를 추락시켜 대만인을

“마치 독사나 맹수 대하듯 하여 정당한 직업을 가진 자와도 교류하길 원하는 중국인이 없고,”

“대만인이라는 세 글자를 들기만 해도 이를 가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관념이 앞서 언급한 대로 광복 후 대만을 접수하러 간

중국관원들 뇌리에 깊이 남아 2.28사건 중

대만인에 대한 탄압의 한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 「일제시기 臺灣人의 중국 진출 유형과 그 삶」에서 참고.



요약)

일제시대에는 대만낭인(臺灣浪人)이라는 대만인 폭력배 집단이 있었다.


일본의 비호를 받아 중국에서 각종 범죄와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으며,

일본의 침략 공작 일환으로 일본인 일가족을 살해하기도 했다.


조직명도 악명높은 씨팔따꺼(十八大哥)ㄷㄷ


심지어 일본군이 침략해오자 일장기를 휘두르며 앞잡이 노릇을 하고,

일본군의 중국 침략에 가장 앞장서서 호응하는 집단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에게 대만인의 인상 = 짐승같이 잔악한 매국노 무리.


국민당 통치 아래에서 대만인이 핍박받은 이유 = 흉적 매국노의 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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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ㅇㅇ님의 댓글

  • ㅇㅇ
  • 작성일
근데 하문, 복주라고 하니까 좀 알아듣기 힘든데그냥 원어발음으로 샤먼, 푸저우라고 써주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ㅁㄴㅇㄹ님의 댓글

  • ㅁㄴㅇㄹ
  • 작성일
논문이 저래서. 바꿀게.ㅇㅇ

thesexgod님의 댓글

  • thesexgod
  • 작성일
원래 대만인들은 굉장히 호전적이고 야만적인 사람들이었음. 일본 지배 거치면서 그나마 사람 된게 저거임. 근데 그것도 존나 최악의 혼종으로 재탄생해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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