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퀘벡에 대해 ARABOZ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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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필검머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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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똥글 조회수가 오져버리길래 일부러 빼놓은 퀘벡을 가지고 왔다.
퀘벡은 나의 고향이자 우리 부모님 이민 생활의 발판이 된 주다. 이 ㅈ같지만 그래도 애정하는 주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해서 기쁠 따름이다.
그래도 이건 알아두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깨비 이전에 퀘벡에 관심두는 한국인 1도 없었음ㅋ
흥미 위주의 역사적 사실만 적을 것이고 퀘벡이 시행하는 이민정책은 나보다 이민 준비하는놈들이 더 잘 알테니 묻지마라.
물론 난 지금은 다른 주에 산다ㅋ
1. 소개
불어쓰는건 다 알면서 캐나다에서 제일 넓은 주고 인구 수가 두번 째로 많은건 잘들 모른다. 알 필요도 없지만 깨알 자랑해본다.
96년, 06년 그리고 16년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Francophone들이 80% 언저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뚝심 있는 주다. 민족적으로도 마찬가지.
몬트리올은 영어쓴다고? 와보긴 했나 모르겠지만 퀘벡에 태생 Anglo들은 많아봐야 10~15%다. 그외는 다 타주유입이다. 그리고 이 Anglo들이 몬트리올에 집중되어 거주하는건 사실이지만 걔네들도 십중팔구는 불어구사에 문제가 없는 애들이다. 그러니 거기에 사는거다.
보통 레딧에서 중서부애들이 말하는 퀘벡에서 영어를 듣게되는 이유는 대충 다음과 같다.
첫번째, 너가 대뜸 영어로 물어봤기 때문에 이새끼 불어못하는구나하고 마음정리를 1초만에 해버려서.
두번째, 너의 행색이 여행객이라 이새끼 불어못하는구나하고 마음정리를 1초만에 해버려서.
불어를 못하더라도 예의상 "Svp mais 혹은 Pardon mais Je ne parle pas français", 이게 입에 안붙으면 그냥 Je ne sais pas français 던져놓고 영어로 씨부리는게 맞다. 똥씹은 것 마냥 표정은 안좋지만 모든 질문에 친절히 대답해주는 퀘붸꽈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 ㅈ같은 주에는 애국가마냥 부르는 노래가 있는데 Gens du pays 라고 나중에 한번 들어봐라. 애새끼들 기질에 안맞게 차분한 곡이다.
2. 역사1 - 초기
[Jacques Cartier]
퀘벡은 원래 먼 옛날엔 빙하에 묻혀있던 땅이다. 한국 애들도 많이 들어본 이누이트들이 바로 퀘벡에서부터 그 윗지방에 분포해 살던 애들이다. 아무튼 얘네랑 다른 부족 인디언들이 평화롭게 살던 와중에 1500년대에 Jacques Cartier라는 놈이 무비자 입국을 하게 된다. 동부에 거주한다면 St Lawrence강은 한번 쯤 들어봤을텐데 그 강이 임마가 타고 들어온 강이다. 퀘베꽈들한테는 콜럼버스같은 양반이니 이름이라도 알아두는게 좋다.
근데 사실 이새끼는 들어오자마자 "여기가 바로 Nouvelle France다!" 선언해논거 빼곤 별로 한게 없다. 왜냐면 와서 겨울 지내고 존나 춥네하면서 돌아갔거든. 돌아가서도 국왕이였던 Francis 1세한테 그곳은 그냥 존나 추운 쓰레기땅 입니다 라고 보고했음. 실제로도 Jacques가 있었던 해 겨울은 존나게 혹독했다고 배운다. 여성 정착민들은 출산하다가 저체온증으로 죽고, 태어난 애기도 추워서 출생 몇시간만에 죽고, 그냥 너무 추워서 모유가 나오질 않아 영아들도 죽어나가고, 먹을게 없어 남정네들끼리 사냥하러나가 실종됐는데 다음해 7월에 눈이 녹자 시체로 발견되는 등등 씹험난했다. 그외 인디언들하고의 관계도 씹창내고 그대로 내동댕이 치고 돌아간 양반이니까 빨 정도까지의 인물은 아니다.
[Samuel de Champlain]
그렇게 관리 개판에 내팽겨쳐진 정착지를 1600년대에 이르러 Samuel de Champlain이라는 양반이 들어와서 회생시키는데 이 양반이 진짜 퀘벡을 세운 찐 의인이다. 과정설명은 귀찮아서 생략하지만 인디언들과의 화합에도 힘썼고 잠깐 통치해보라고 파견되어 마주한 땅과 정이 들어 평생을 살다 퀘벡에 묻힌 분이다. 1608년에 퀘벡을 창립하사 08년도에는 400주년 창립기념식이 있었다.
3. 역사2 - 영국계 vs 프랑스계
대충 알겠지만 이에 덧붙여 설명하자면 원래부터 계속 자잘한 갈등은 있어왔다. 본토에서도 싫어하던 애들이 정착지에서 친할리가.
서로 인디언들을 포섭해 물물교환하는척 첩보활동을 하게하고 인디언들끼리 이간질시켜 싸우게하고 등등 많지만 결정적으로 프랑스가 캐나다에서의 힘을 잃은 이유는 7년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임. 7년 전쟁을 제대로 모르는 애들은 영국 본토와 프랑스 본토가 싸운 전쟁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오스트리아(프랑스와 동맹)와 Preussen(영국과 동맹)이라는 국가 둘이 싸운 전쟁이고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여기에 편을 나눠 참전했었음. Preussen이 승리하자 프랑스는 당연히 캐나다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자연스레 퀘벡을 영국에 넘겨주게 됨. 다시 말해서 프랑스계 정착민들은 본토에서 버림받은거임.
애초부터 영-프가 중세부터 라이벌관계인것도 한목했지만 이 프랑스계 피에 대대로 흐르는 Resistant의 기질이 참 웃긴게 이새끼들은 복종이라는걸 모름.
다 설명하면 재미없고 1763년 Traité de Paris(파리조약)에서 퀘벡 통치권을 영국이 정식으로 가져가면서 지대로 간섭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초기에는 불어사용은 계속 할 수 있게 해줬음. 근데 슬슬 프랑스계를 사회적으로 차별하면서 언어부터 주로 믿던 카톨릭까지도 제한해버리니 얘네가 안빡칠 수가.
흘러서 1차대전때 생긴 갈등이 지금까지 온다고 보면 되는게, 영-프가 오랜만에 동맹국이 되었음에도 캐나다 내부에서는 사실상 갈등이 더 커졌음. 영국계 캐나다놈들은 당연히 모국인 영국을 도와야하니 너도나도 자원을 해댔지만 프랑스계들은 아 내가 왜 거길가냐 였음. 이게 서로한테 아니꼬왔던거임.
거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온타리오 공교육과정에서 불어교육을 폐지해버린 것이 떡밥이되서 "아 우리의 언어를 구사할 동등한 권리도 안챙겨주는데 왜 영국을 위해 목숨 바쳐야하느냐"에 대한 아이디어가 영국계와 퀘베꽈들을 완전히 갈라놓게 됨. 그나마 1차대전에 자원한 소수 퀘붸꽈들은 영-프 혼혈계들이 대부분이였고 영국을 위해 싸운다기보다는 그냥 마더 캐나다를 위해 싸운다는 마음가짐이 더 컸다.
이후는 반응봐서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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