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분류
캐나다 독립 타임라인 정리해준다
작성자 정보
- RAAF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95 조회
본문
1867년 7월 1일
영국 의회에서 British North America Act라는 법이 통과되고 7월 1일 공포되어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 생긴다.
BNA 법은 캐나다 1차 헌법이라고 보면 되며, 당시 대영제국 체제 내에서 자치령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캐나다인들은 고도의 자주적인 내정권한을 향유하게 된다
이 7월 1일을 캐나다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1926년 11월
자치령은 고도의 내정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교권과 군사권만은 본국인 영국 의회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당시에는 캐나다 말고도 여러 자치령들이 중앙정부 대표와 몇년에 한 번씩 모여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는 제국회의 (Imperial Conference)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1926년의 제국회의에서 당시 캐나다 총리였던 맥켄지 킹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과 자치령은 동등한 외교권과 군사권을 가진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밸푸어 선언은 이후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법제화 된다)
이 때 캐나다는 독자적인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진 실질적인 독립국이 된다.
맥켄지 킹 총리가 밸푸어 선언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이유가, 총독이 의회해산 요청을 자의적으로 씹어버려서 최종적인 국사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밸푸어 선언을 통해 총독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국왕과 본국 정부(영국 의회)의 대리자”에서 “국왕의 대리자”로 재조정되어 상징적인 권한만 갖게 되었다.
물론 국왕의 대권은 국왕의 대리자로서 향유하므로 현재도 캐나다 총독은 자의적으로 총리 이하 정부 각료를 모두 짜르고 군대를 동원하는 등의 국사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걸 했다가는 6개월 내에 캐나다가 공화국이 될지도 모른다.
1982년 4월 17일
밸푸어 선언과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실질적으로 독립국이 된 캐나다였지만
대영제국 체제의 일원으로써 헌법 개정만큼은 본국 정부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았어야 했었다.
1982년 영국의회에서 통과되고 4월 17일 공포된 캐나다법으로 영국 의회는 캐나다 헌법 개정 승인 권한을 포기하였고
마침내 캐나다는 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이라는 국가와는 하등한 정치적 관계가 없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이 때부터 캐나다는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라는 명칭을 버리고 캐나다 Canada 라고만 자신을 칭하고 있다.
참고로 1982년 4월 17일 이전까지는 캐나다의 시민은 대영제국의 신민이었으므로
1982년 4월 17일 이전에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그 이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상실한 적이 없었던 사람은
별다른 절차 없이 영국에서의 거주권 (right of abode - 영주권과 비슷)을 가진다.
그럼 광복절 기념 캐나다 독립사 끗
영국 의회에서 British North America Act라는 법이 통과되고 7월 1일 공포되어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 생긴다.
BNA 법은 캐나다 1차 헌법이라고 보면 되며, 당시 대영제국 체제 내에서 자치령이라는 개념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캐나다인들은 고도의 자주적인 내정권한을 향유하게 된다
이 7월 1일을 캐나다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1926년 11월
자치령은 고도의 내정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외교권과 군사권만은 본국인 영국 의회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당시에는 캐나다 말고도 여러 자치령들이 중앙정부 대표와 몇년에 한 번씩 모여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는 제국회의 (Imperial Conference)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1926년의 제국회의에서 당시 캐나다 총리였던 맥켄지 킹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영국과 자치령은 동등한 외교권과 군사권을 가진다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밸푸어 선언은 이후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법제화 된다)
이 때 캐나다는 독자적인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진 실질적인 독립국이 된다.
맥켄지 킹 총리가 밸푸어 선언을 강력하게 밀어붙인 이유가, 총독이 의회해산 요청을 자의적으로 씹어버려서 최종적인 국사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밸푸어 선언을 통해 총독의 역할은 실질적으로 “국왕과 본국 정부(영국 의회)의 대리자”에서 “국왕의 대리자”로 재조정되어 상징적인 권한만 갖게 되었다.
물론 국왕의 대권은 국왕의 대리자로서 향유하므로 현재도 캐나다 총독은 자의적으로 총리 이하 정부 각료를 모두 짜르고 군대를 동원하는 등의 국사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걸 했다가는 6개월 내에 캐나다가 공화국이 될지도 모른다.
1982년 4월 17일
밸푸어 선언과 웨스트민스터 헌장으로 실질적으로 독립국이 된 캐나다였지만
대영제국 체제의 일원으로써 헌법 개정만큼은 본국 정부 (=영국 의회)의 승인을 받았어야 했었다.
1982년 영국의회에서 통과되고 4월 17일 공포된 캐나다법으로 영국 의회는 캐나다 헌법 개정 승인 권한을 포기하였고
마침내 캐나다는 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이라는 국가와는 하등한 정치적 관계가 없는 완전한 독립국이 되었다.
이 때부터 캐나다는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라는 명칭을 버리고 캐나다 Canada 라고만 자신을 칭하고 있다.
참고로 1982년 4월 17일 이전까지는 캐나다의 시민은 대영제국의 신민이었으므로
1982년 4월 17일 이전에 캐나다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그 이후에 캐나다 시민권을 상실한 적이 없었던 사람은
별다른 절차 없이 영국에서의 거주권 (right of abode - 영주권과 비슷)을 가진다.
그럼 광복절 기념 캐나다 독립사 끗
관련자료
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