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種差別적 한반도 혐한과 희대의 용인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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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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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爭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 1862.9.1~1933.10.15)의 말대로 <지적경기>가 되어야 한다. 사실상, 공개 게시판에 이견이 넘쳐나서 서로 간의 견해 교환으로 떠들썩하는 게 활력 있어 좋다.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다양한 관점이 오고가면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캐치해 낼 수 있어 유익해진다. 정서적으로도 즐거워진다. 왜냐하면 인간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것은 추하다. 변태가 아니라면, 누구나 꺼리기 마련이다.
아직은 ‘일마갤’에 과객이 많지 않아, 그야말로 정체된 느낌이라 아쉽다. 하여, 일방적인 것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반일도배’들이나 인종주의적 속성의 본질로는 오십보백보인 ‘한반도 혐한’들이라도 와 주면 좋겠다고 하던 차에, 어제 한반도 혐한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누군가가 견문을 넓히자는 유지군의 글에 이렇게 주장했다.
<시정잡배가 아니어도 한국인은 가능한한 일본에 안가야 한다. 자꾸 오염을 부추기지 마라>
유지군과 다른 견해라 반가운 마음(?)에 다시 본문 글로 유지군의 견해를 차제에 밝힌다.(이 논쟁이 계속 이어지면 재미있겠다. 보는 사람들도 다이나믹해서 즐거울 것도 같다.^^)
자, 일단 일마갤 분들은 어떤가, 유지군은 이 주장이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한다. 하여, 미안하지만 유지군은 결단코 납득하지 못하겠다. 국적이 한국인이라서 日本에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일방적이다. 진상부리는 ‘인간말종’의 국적과 같다고 해서 왜 잡배가 아닌 한국 국적의 사람까지 피해를 입어야 하나? 본인의 행위로 인한 책임이 아닌, 타인의 책임까지 연좌하는 건 李朝시대에나 통용될 일이다. 연좌제를 궤멸시키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현대의 시대정신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용납할 수 없는 부조리다!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 혐한들 중 극히 일부가 이런 행태를 서슴없이 보이고 있다는 점에 있다. 굳이 사례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디시에서 인종주의적 혐한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몇몇 주장만 살펴봐도 이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인종주의적 증오가 그득한 주장들에서 과연 사색과 논리를 찾을 수가 있을까? 왜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유지군이나 일마갤 분들이 연좌제에 짓눌러야 되는가?
사색과 논리가 없는 주장이 보편성을 얻을 수는 없다. 그것에는 허세와 증오와 차별만이 웅크릴 따름이다. 그래서 ‘조선인 멸족이 답’이니 하는 잔악한 주장들 앞에선 서글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불쾌해지기도 한다.
마치 ‘용인전투’의 누군가를 보는 듯도 해 헛웃음마저 나온다. 니토베 이나조의 <지적경기>의 분위기조차 느낄 수 없는 것에는 차라리 연민마저 든다.
연민의 마음으로 한반도 혐한의 영척없는 모습을 보면 임진전쟁 때 稀代의 용인전투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용인전투의 은유가, 용인전투의 교훈이, 그것들에게 가 닿는다. 씁쓰레하게 웃는다.
용인전투? 용인전투란 임진전쟁 초기 한성을 탈환하기 위한 조선군 최대의 프로젝트를 실현하려 했던 전투였다.
때는 1592년 6월이었다. 남도의 근왕군이 총집결하였단다. 그 숫자가 자그마치 실록에 의하면 6만이란다. 전라감사 이광부터 경상도 순찰사 김수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굳게 결속해 스스로 삼도근왕군이라 칭했다. 만약 한성을 탈환하면 日本軍은 졸지에 허를 찔리게 된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같은 대반전이 이루어지는 형상이니까 말이다.
상상해 보라,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겠나.
주력이 모두 북진해 있는 상황에서 日本軍의 당혹감이야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여 조선 출병에 1500명의 병력을 동원한 와키사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허겁지겁 출동했다. 이를 日本 측의 기록인 <脇坂記>는 이렇게 기록한다.
<한성에서 급보를 받은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급히 병력을 이끌고 출발하여,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와 합류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선발대인 기병이 조선군의 진영을 공격하자, 조선군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도망쳤다>
조선 측 기록인 <연려실기술 –제 15권 선조조 고사본말>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선봉의 왜군 5명은 얼굴에 쇠탈을 쓰고 백마를 타고 칼을 휘둘렀는데, 선봉의 충청병마사 신익이 그것을 보고 도망치자, 군졸들도 덩달아 도망을 치는데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하수가 터지는 듯하였다. 적의 기병 두어 명이 10리나 쫓아오다가 되돌아갔다…… 남도근왕군은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
1500명의 병력으로 수만의 대군을 물리쳤는데도 후일 日本은 이 전투를 임진전쟁의 대첩으로도 여기지 않았다. 사실, 유지군의 개인적 견해로도 이 전투는 보기에 안쓰럽다. 다만 수만의 인명이 희생되지 않은 점에 대해선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개인 하나하나의 목숨이다. 솔직히, 아무리 1592년이고 당대의 전쟁은 목적을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이 된 시대라 하더라도, 침략을 자행한 쪽을 좋게 봐줄 수는 없다. 그저 그 전투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 다행이란 생각만 든다.
오합지졸이 하는 전쟁은 보기에 추하다.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루며 서로가 상대에 대해 예를 갖춰 치열한 전투를 행하는 것이 보기에 좋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끝까지 반대한다. 개개인의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죽어라 하는 극히 일부의 한반도 혐한들의 추한 모습에서 용인전투가 이렇게 오버랩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될지.^^
자신과 다른 견해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 소양의 척도, 그런 모습이 극히 일부의 혐한들에게도 보이면 좋겠다. 그러면 보편성을 향해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 정말 사색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인종주의적 주장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부끄러운 일인지 속절없이 자각할 수 있을 게다. 이거, 오죽하면 용인전투가 다 생각나겠나.^^
모처럼 푸른 하늘이 보이는 일요일 오후다. 인종주주의적 혐한이나 반일에 사로잡힌 분들, 와카 한 수를 읊조리면서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자. 성찰은 성숙으로 이르는 첩경이다.
<향기를 맡으로 휘파람새가 찾아왔다
봄안개는 그를 숨기려 해도 휘파람새가 지저귀고 있으니
그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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