観光大国 , 新世界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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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취워리어가 2017년 訪日 관광객 통계를 들고 와 유심히 봤더니 3천만에 가까운 2천 8백만. 그야말로 예상대로라 경탄했다. 2017년 한 해에만 日本을 찾은 한국인도 7백만이라니 놀랍다. 台湾이나 지나(支那)의 관광객도 엄청났고 米國과 유럽의 여행객 증가도 의미심장해 보였다. 이젠 관광대국이란 명칭에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베 내각의 목표대로 2020 도쿄 올림픽 때까지 4천만 명의 관광객 유치도 지금 추세라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관광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고 한다면 솔직히 日本의 입장에선 뒤늦게 관광대국으로 진입한 셈이다.
눈부신 관광자원으로 보면 “이제야?” 하는 의문이 들고도 남는다. 물론 유럽이 아닌 아시아라는 지리적 요인이나 입국의 까다로운 점 등 그간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게다. 허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메이지 시대에 벌써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선각자도 존재했다는 점이다.
기노시다 요시오(木下淑 1874-1923)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도다이(東大)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인재로서 일찍부터 관광정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메이지 당대라면 열강의 각축이 살벌했고 제국주의 물결이 세계를 휩쓸고 있을 때라 솔직히 그 식견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에 포커스를 두고 ‘관광’을 인식했던 것은 시대의 潮流를 뛰어 넘어 앞섰다는 얘기다.
메이지 43년(1910년) 기노시다는 당시 철도국의 영업과장이었는데, 때마침 방일한 뉴욕의 日本協會 회장 린제이 러셀과 의기투합했다.
러셀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日本에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인물이었다.
“자원이 부족한 日本은 천혜의 경관을 해외에 어필,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
러셀의 조언은 기노시다 평소의 지론이었던 바, 그는 전력을 다해 호텔과 백화점, 철도회사의 협력을 얻어 JTB(Japan Tourist Bureau)를 창립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헤이세이 현재 JTB는 日本의 취활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회사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JTB는 그후 해외에도 촉탁 안내소를 열어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앞장섰다. 다이쇼 시대의 외국인 관광객은 대략 3만 정도가 아닐까, 하고 추정하는데 2천 8백만 운운하는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당대의 상황으로 유추하면 놀라운 일이다.
하긴 호화 여객선 덴요마루(天洋丸)가 나가사키의 미쓰비시조선소에서 建造된 것이 메이지 41년 때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 항로에 뛰어든 덴요마루는 당시로서는 신기술인 증기터빈을 탑재한 호화여객선이었다. 음주와 흡연을 즐길 수 있는 라운지도 설치되었다고 하니, 관광을 산업으로 본 선각자적 시각은 그 이전부터 내재되어 있었다고 봐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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