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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教場>, 日本人의 大和魂을 표상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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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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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TV개국 60주년기념드라마 <교장>의 포스터(출처: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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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보자. 카자마는 미야사카, 시노부, 츠즈키(都築耀太), 쿠사가베(日下部准), 히시누마(菱沼羽津希)를 한 팀으로 묶어 가상 살인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추리해 내라는 과제를 준다. 미야사카 일행은 머리를 맞대고 적절한 추리로 과제를 푼다. 카자마는 그들이 푼 답을 정답이라 인정한다. 그러나 카자마는 냉철히 지적한다. 너희들이 놓친 것이 있다,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전원 불합격이다, 라고. 왜 그랬을까? 그 다섯 명이 경찰로서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려서일까?


그럴 수도 있을 테다. 경찰학교에서 부적절한 자들을 색출해내는 것은 하나의 부인될 수 없는 의무다. 시민의 안녕과 거리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총이 좋아서 경찰이 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걸러내는 것이 옳다. 무장한 경찰에게 책임감이 없다는 건 시민들에겐 치명적인 위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카자마는 생도들에게 언제나 당당히 표명한다. “문제가 있는 자들을 현장에 내보낼 생각은 절대로 없다!”


졸지에 미야사카 일행은 절체절명에 놓인다. 페리페테이아(peripeteia)적 위기에 빠진 그들을 향해 카자마의 혼신을 다한 교육이 엄숙히, 그리고 엄격히, 더한층 과격하게 덧붙여진다. 미야사카 일행은 꼼짝없이 아연실색한다. 교육을 종료하며 카자마는 부르짖듯 말한다.

“경찰은 고통 받는 피해자의 편이다. 그것이 경찰관의 일이다!”


이 엄정한 단언(断言)은 교육 현장의 미야사카 일행을 일시에 깨우치게 만드는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적 성찰을 강렬히 불러일으킨다. 아니, 그 순간 텍스트는 단숨에 구체화(具體化)되어 <교장> 바깥의 소비자들에게까지 断言의 울림은 대단히 크게 퍼져 버린다.

그리하여 시노부가 울먹이면서 간신히 토해냈던 말…… “피해자는 필시 원통했을 겁니다!” 마침내 보편의 교감은 깊은 조화로 이어진다. 경찰관이라면 반드시 구현시켜야 할 마음가짐. 이것이 카자마의 존재 근거이고 경찰의 당위성(當爲性)이며 핵심중의 핵심에 다름 아니다. <교장教場>의 간절한 페르소나로 해도 단연코 지나치지 않다. 당연히 TV 바깥의 시청자 또한 울컥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동시에 카자마야말로 日本人들에게 있어선 고래로부터 구축시켜 온, 앞으로도 추구해나갈 인물상(人物像)이며, 日本 검찰이 모토로 삼고 있는 추상열일(秋霜列日)의 발현(発現)이 되어 버린다.(솔직히 말하면 小生도 굉장히 동경하는 인물상이다.)

예컨대 사상가이자, 경제학자, 외교가인 동시에 교육가였던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1862-1933) 선생이 저술한 불멸의 역작 <무사도武士道Bushido: The Soul of Japan>에서 역설한 무사도적 범주((範疇)의 인물상과도 다름없게 된다.


<동작이 침착하고 정신이 평온하면 어떤 일을 당해도 감정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중국(지나支那)과의 전쟁 당시 어느 연대가 고향에서 출발할 때 병사들을 전송하러 많은 사람들이 역에 나온 적이 있었다. 이 광경을 보던 한 米国人은 사람들이 병사들과 이별하면서 틀림없이 큰소리로 울며 감정을 폭발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에 나온 사람들 중에는 병사들의 부모들도 있고 아내도 애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米国人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기적이 울리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는데도 사람들은 조용히 모자를 벗어 이별의 예를 갖출 뿐, 손수건을 흔들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무거운 침묵 속에서 간간이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나올 뿐이었다.>


이것은 격정을 억제하는, 자기 절제의 간곡한 모습의 한 일단(一端)이다. 헤아려 보면 판단되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현장에서도 절제(節制)를 유지하려면 상당한 자기 수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당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교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될 과정이 아닐 수 없겠다. 감정을 내키는 대로 발산하려는 자기중심적 잡배들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카자마가 마초(macho)로 불릴 수 없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엄격한 절제, 가장 중요한 척도 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니토베 선생의 역설은 그대로 카자마와 매치되고 만다. 日本人 에토스의 선연(鮮然)한 알레고리로 유감없이 기능된 셈이다. 그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면, 생도들에게 엄격한 훈련을 되풀이시키는 카자마의 인물상이 도달하려는 경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추상열일의 기백이 맞닿는 곳, 바로 무사도(武士道)의 범주(範疇)에 속하기 때문이다.

다시 니토베 선생의 지론을 듣는다.


<무사도는 여러 사회계급으로 흘러들어 대중들에게 효모와 같은 작용을 하고 도덕의 표준을 공급했다. 무사도는 시작에 있어서는 엘리트의 영광에 불과했지만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온 국민이 열망하는 영적 감화자(感化者)가 되었다…… 대화혼(大和魂)이라는 말은 국민정신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역시 <교장教場>과의 접점(接点)을 혁혁히 이룬다. 그것은 검도 도장(剣道場)에서의 단 1합을 휘두르는 카자마의 시퀀스로도 단호히 구현된다. 이 순간, 카자마의 모습은 매우 엄격하며 단아하기 이를 데 없다. 시대를 넘나드는 무사의 비주얼로서 시각전달(視覚伝達visual communication)의 효과를 여지없이 누릴 만큼 매우 선연(鮮姸)하다.


따라서 대미의 시퀀스에서 카자마가(剣道場에서의 시퀀스 또한 포석이 되어) 부르짖었던 말은, “경찰은 고통 받는 피해자의 편이다. 그것이 경찰관의 일이다!” 그대로 일직선과도 같이 추상열일의 이데아로 영겁회귀(永劫回帰)되며, 공동체의 정교한 조화를 수놓는 정점(頂点)의 경지로까지 전화시켜 낸다. 왜 日本에서 수많은 경찰물 소설이나 드라마가 쉴 새 없이 개발되는지 그 이유의 일단도 설명이 가능해지고도 남는다. 달리 말하면 원천(源泉)이다.


2020년, 레이와(令和) 2년의 벽두, 그야말로 최고의 작품을 본다. 카자마라는 인물상을 통해 日本人들 궁극의 지향점(指向点)도 여지없이 전율처럼 실감한다.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소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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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군님의 댓글

  • 유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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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군님의 댓글

  • 유지군
  • 작성일
그것은 정말로, 정말로 소중하고, 기꺼운 경험이다. 보고 난 후, 긴 여운에 젖어든 채 감동의 눈물을 한동안 참지 못했다. 「&lt;교장教場&gt;을 제작 방영한 후지TV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가장 日本的 에토스를 통해 사유의 즐거움을 누리게 할 뿐만 아니라, 교감을 전제로 한 보편의 감동을 &lt;교장教場&gt;이 깊이깊이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단연 최고입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에 불과할 정도로. 참, 카자마를 표현한 기무라 타쿠야씨 당신의 연기도 지고(至高)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유지군님의 댓글

  • 유지군
  • 작성일
아침에 NHK 뉴스를 보다 보니까, 오늘이 타이완의 총통 선거가 있는 날이더군요. 이것저것 바빠, 깜빡했는데 아아, 그렇군, 하며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뉴스에선 그간 국민당을 지지하다 이번에 민진당 지지로 마음을 정한 유권자 한 분과의 인터뷰가 나왔는데요,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그분의 선택이 여간 의미심장하지 않았습니다. 자유ㅡ 평등, 박애를 기조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는 우리 인류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라고 小生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인들을 응원하며, 그분들의 올곧은 선택을 지지합니다. 타이완 파이팅!! 뜨거운 형제애의 성원을 보내며 민진당 승리를 뜨겁게 기원합니다!

ㅇㅇ님의 댓글

  • ㅇㅇ
  • 작성일
조센징새끼들은 절대 못만들 드라마네

유지군님의 댓글

  • 유지군
  • 작성일
음, 한국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는 통 보지를 못해서 &lt;교장&gt;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겟습니다만^^ &lt;교장&gt;은 최고의 작품입니다. 적극 추천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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