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갤에서 오신 우파분들 환영^^ 유지군은 여전히 마이너 포에트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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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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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gene님과의 논쟁이 제법 화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전체 갤러리에 비하면 조회 수도 턱없이 적고 파급력도 없겠지만, 그래도 근현대사갤러리에서 활동하는 미시사가 님이 오셔서 느닷없이 댓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낯익은 필명이라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하여 이 논쟁을 그쪽에서도 알고 있나 싶어 궁금한 마음에 들러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법 만만찮은 조회 수로 유지군 운운하며 글 하나가 올라와 있더군요. 어이쿠, 했답니다.^^
상주 인원이 적은 일마갤이라 이것도 홍보가 되었겠다 싶어 기껍더군요. 이런 게 논쟁의 효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글을 올린 분, 이거 서운합니다.^^ 유지군의 본성이 이제야 드러났다면서 키득대시는데^^ 차제에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유지군의 본성은 말이지요, 역갤 이전부터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이미 코즈모폴리터니즘을 표방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세계를 눈부신 日本이 米国 대신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을 뿐이랍니다.(유지군 글을 지금껏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지군은 아메리카를 한자로 표기할 때 美國이라고 쓰지 않아요. 반드시 米国이라 쓰지요. 여전히 일관되어 있답니다.) 그런 유지군은 지금껏 좌우익 모두와 동서방불패^^ 치열하게 싸워 왔답니다.
유지군은 옛날부터 우파 아니었어요. 셰익스피어 앞에서도 당당한 마이너 포에트예요! 지배계급의 회유에도 굴하지 않지요. 그래서 우파한테는 쪽발이 소리 들었고요, 좌파에게는 제국주의자라고 비판당했답니다.^^ 그런데 뭘 본성을 이제야 드러내요? 옛날부터 그대로인데. 사실 관계를 똑바로 파악하셔요, 꼴같잖은 혐한 우파님들^^
그래도 유지군은 근갤의 혐한 우파님들이 자주, 자주 일갤에 들러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본적으로 유지군은 논쟁과 대화를 즐거워하거든요. 눈부신 日本에 대해 무엇이라도 자꾸 자꾸 알려주고 싶기도 해요^^ 심지어 대화를 거부하지 않으신다면 ‘조센징 멸족이 답’이라는 분들도 오셔요. 정말 그게 하나의 방안이 되는지 유지군과 함께 짬이 날 때마다 진지하게 토론해요.
잠깐, 그럼 넌 우파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면 뭐냐? 라고 묻는다면 말이지요^^ 유지군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렵니다.
유지군은 세계를 이끄는 日本의 用心棒올시다!
그래요, 마이너 포에트인 유지군은 세계 인류의 用心棒로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런 用心棒의 미학을 다룬 영화도 있습니다. 마치 유지군을 그린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그 얘기를 한 번 해 보렵니다.
1961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用心棒>입니다.
일단 구로사와 감독님은 <7인의 사무라이>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액션활극’의 정점을 <요짐보>에서 이루어 냈습니다.
왜냐하면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지요. 이를테면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가 마지막 부분에서 ‘악의 세력’들을 단 칼에 베어버리는 장면은 거의 현실 같은 ‘동일시’를 관객에게 선사하고 있었어요. 그야말로 스크린 밖의 관객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구로사와 감독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1962년 <쓰바키 산주로>의 마지막 결투신을 ‘롱 테이크’ 기법으로 완성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도 하지요. <영웅본색>으로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오우삼’이나 <와일드 번치>의 ‘셈 페킨파’는 생애의 명장면으로 <쓰바키 산주로>의 결투신을 손꼽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요짐보를 연기한 미후네 도시로는 ‘현실적인 영웅’인 셈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말입니다. <요짐보>는 ‘형식미’ 측면뿐만 아니라, 감독의 ‘사유’가 담겨져 있는 ‘내용’에서도 사실, 아주 심상치가 않습니다.
두 패거리가 서로에게 테러를 가하며 대립되어 있는 마을에 어느날 유지군처럼 멋진 낭인 무사가 흘러 들어옵니다.
그는 양쪽의 ‘대립 세력’들에게 희생되어 가는 농부들을 구출하고, 양대 세력을 단숨에 괴멸시켜 버리지요. 그렇다고 양대 세력이 이분법적 ‘선악’으로 명쾌하게 구분되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구로사와 감독님의 은유는 깊은 만큼 유쾌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요짐보>는 ‘베니스영화제’에서 미후네 도시로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상시켜 줬고, 이후 여기에 열광한 서구의 감독들은 리메이크를 뜨겁게 되풀이해 왔습니다. ‘셀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었고 ‘월터 힐’은 ‘부르스 윌리스’를 기용하여 <라스트 맨 스탠딩>을 완성했지요.
요즘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 네가 죽어라, 아니다, 네놈이 죽어라 하는 증오 분출의 광기 시대에 정말이지 우리 인류의 用心棒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유지군은 세계의 用心棒는 日本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기야, 당장에 말이지요, 당장 저토록 간악한 주장인 “조센징들을 대규모로 학살하라”는 천인공노의 발언까지도 양심이나 이성의 가책도 없이, 더욱이 이 주장이 근갤에서는 추천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는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저 간악한 악한들을 일거에 쓰러뜨리고 어깨를 으쓱하며, 유유히 마을을 떠나는 미후네 도시로 같은 <현실적인 영웅>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간절히 원해 보기도 합니다.
손바닥에 턱을 괴고 유지군은 창밖의 세계를 보며 그러한 요짐보를 열심히^^ 그려보는 거지요.
옛날에 한국에서도 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히트를 쳤던 <보디가드>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휘트니 휴스턴’과 극장에서 <요짐보>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이 영화를 60번도 넘게 보았습니다…….”
하기야 우리 인류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유지군은 600번이라도 볼 수 있을 텐데…….
아시아의 변방에서 유지군은 멋쩍은 상상을 엘레지처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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