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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번에도 썼지만.. 임진왜란이 진짜 최후의 기회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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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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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도 딱 조선의 모순들이 임계점에 다다랐을때였음


그쯔음부터 신하들이 동서로 나뉘어서 분열되기 시작했고, 당시 조선 임금은 굉장히 한심했었던 선조가 왕이었고, 임진왜란 도중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선 530년 역사상 세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심했었던 계갑 대기근이 일어났었고, 당시 명나라 암군 F4중 제일이라고 여겨지는 최악의 암군 만력제가 중국 황제였고, 당시 일본의 전력은 전근대 모든 기간중 최강이었음


마치 신이 정해놓은듯이 기가막히게 모든 최고의 조건들이 다 맞아 떨어지며 갖춰졌었음


그리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조선 관리들은 싸우지도 않고 허겁지겁 도망가느라 2주만에 수도도 함락됐었음


만약 그때 점령당했다면 반도인들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거임



피도 최소한으로 적게 흘렸고 저항도 거의 안했으니 점령민에 대한 악감정도 없었을것이고 대우도 좋았을것임 (유럽, 레반트, 로마 등의 역사를 봐도 알수있음)


게다가 전국시대 내내 수많은 쿠니들로 서로 분열되었다가 이제 막 합쳐진때라, 새로 편입되어도 이질감이나 저항감같은것도 적었을거임


그냥 조선이라는 추악하고 뒤틀린 밈플렉스가 한순간에 다 붕괴되고, 일본에 편입되어서 에도시대로 같이 진입했다면


일본인들의 추진력에 영향받아서 오히려 더 좋아졌을지도 모름




그런데 선조가 맞서 싸우기는 커녕 백성들을 버리고 헐레벌떡 도망친데다, 평생 놀고먹던 만력제가 갑자기 귀신이라도 씌였는지 전근대 기준으로 20만명이라는 엄청난 병력을 파병해주고

곽몽징을 통해 은 2만냥을 선조에게 군자금으로 지원해주고 (조선왕조실록 선조 1592년 6월 24일)

하북에서 쌀 13만석을 지원해주고

산동에서 해로로 쌀 10만석을 지원해주고 (1593년)

이후 요동에서 14만석, 산동에서 12만석을 추가 지원해주고 (각각 선조실록 1593년 4월 1일, 8월 19일)

이후 또 쌀을 지원해줌 (선조실록 1598년 4월 1일)



임진왜란 다음해에 기근이 일어나서 명나라에 지원 논의를 하자(선조실록 1593년 3월 20일)

만력제가 이 소식을 듣자 쌀 100만석 (90만톤)을 지원해주기도 했음

전쟁당시 93만 7천냥이라는 은이 조선에서 사용되었는데 전부 명나라의 지원금이었으니 실제로는 더 많은 은을 받았을거임 (별개로 심하 전투때 조선군 9천명이 전사하자 위로금으로 은 2만냥을 지원해줌)



만약 그때 조선이 망하고 반도인들이 일본에 편입되었다면 약 430년 동안 일본인들의 통치를 받았을텐데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거라 생각함


약 270년 동안 에도 일본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100년 동안 메이지 근대화 시대를 같이 보내고, 50~60년 동안 같이 현대 시대를 보냈다면(약 430년 동안 일본인의 통치를 받았다면) 한국인들의 정신이 지금보다 탁하지 않았을것이고 어쩌면 일본인처럼 맑아졌을수도 있었을거임

한국인들이 가지고있는 온갖 나쁜 특성들이 전부 노비 트라우마에서 나오는것들인데 이 노비 트라우마가 조선 후기때 완성되었으니...(노비가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도 조선 중기부터였다고 함)

임진왜란을 방어해서 이씨왕조가 살아남음으로 인해 이후 조선인들이 300년에 걸쳐 정신적, 유전적인 불구가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임진왜란이야말로 천국이냐 축생도냐를 가로지었던 운명의 찬스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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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ㅇㅇ님의 댓글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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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까.....정말.......너무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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