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문명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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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화라는 것은 해당되는 경제가 있다.
고대 부터 이여지는 유럽 상인 문화의 경우 그 기반에는 도시와 도시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유통망이 있었고
지방 문화의 경우 그 경제기반이 농업이기에 폐쇄적 문화가 자주 보이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귀족적 군대 및 국가주의와 결합하였다.
철학의 발전은 그것이 영토국가인 경우 국가주의에 정당화 및 발전, 상인이 주도적인 경우에는 부르주아의 투자와 역시 상인문화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발전성을 가졌다.
여기에 비교하면 동양의 경우는 대단히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형태가 다양한 유럽에 비해 동양은 농업 하나에 의존하며 그것조차도 영토형 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해 투자라기 보다는 세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상을 억제하고 농을 민다는 것은 농업 경제 외의 다른 문화가 발전할 여지가 대단히 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통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학문이라는게 학문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나타내며 정치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동양 그 잘난 정신 문명이란 그저 계급체제를 정당화하는 어용 학문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도시 문화의 발전과 그 맥을 같이하는 서양의 문화는 도시 문화와 똑같이 개인주의와 인본주의와 맥을 같이 할 수 있으나 상이 발전하지 않고 농 밖에 없으니 동양은 도시문화의 발전이 존재하지 않고, 도시가 존재하지 않으니 개인주의 문화를 소비할 집단 자체가 없는데다 그 수도라는 것도 체제에 충성하는 인위적 정치 집단이라 서양의 도시와 같은 자유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중화권에서 강조하는 문화 아이콘들이라는게 뭔가? 전부 사상 통제다. 충-효-예를 중얼거리며 이가 어떻다, 이게 우주의 기본 원리다고 하는데 당연히 이걸 누구도 명확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말이 좋아 추상적이지 ㅎㅎ 간단히 말해 이건 그저 인상 조작. 이미지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는 중국, 일본,한국 중 전제정이 아니라 유럽과 같이 유통망이 생기고 봉건제였던 일본 만이 그나마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였음을 나타낸다.
노비와 양반 여성이 무슨 대역죄를 진 것도 아닌데 부부로써 한 방을 썼다고 극형에 처했던 것처럼 동양에서 말하는 충효예란 신분 질서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이미지요 전제조건이지 그 자체로는 학문이라고 말 할 수도 없다. 애시당초 동양 문명을 유럽 문명과 같은 학문의 결과로 보는게 잘못. 학문이 아니라 정치로 이해해야 왜 중화권의 지배집단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가능하다.
농업 경제에 의존하는 전제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업 문화에 반하는 사상은 나와서는 안된다. 그러니 중화권에서는 전제정에 반하고 도시문화에 바탕되는 개인주의, 인본주의, 공화주의,계몽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같은 전제정 문화라고 해도 진영 논리에서 밀리면 숙청되는 중화권 문명에서 개인주의는 성립될래야 성립 될 수 가 없는 것이다.
근대 들어 서양의 자본주의가 이식되어야 그제서야 비스무래한 문화가 동북아시아에 생겨났듯이 중화권은 그 경제기반이 농업에만 의존하고 상을 억제한 전제정 체제인 이상 유럽과 같은 문명은 생겨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야말로 동양이 서양보다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열등했음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