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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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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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초의 맥주, 백화점, 택시가 생겨난 것은 언제, 어디에서일까?
상해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답은 1930년대 만주국에서였다.
하얼빈이 ‘동양의 파리’라는 찬사를 얻은 것도 일본 관동군이 주도해 세운 만주국의 모습이었다.
만주국의 남만주 철도는 부산에서 열차를 타면 파리까지 14일 만에 갈 수 있었다.
상해와 홍콩 못지 않게 화려한 근대 도시들이 일본의 괴뢰국이라는 만주국에 있었다. 그 모습은 동서 융합이었다.
흔히 만주국이라고 하면, 그저 일본 관동군이 만든 ‘괴뢰국’ 정도로 생각하고 수탈이 이뤄진 곳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건 100% 착각이다.
만주국 건국 직후 포드 자동차와 제너럴모터스 등 미국 기업, 홍콩과 상하이 은행, P&O 영국기업 등을 비롯한 각국의 대기업들이 만주국에 지점을 두고 영업하였다.
포드자동차나 제너럴모터스의 경우 승용차에서 절반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만주국에는 러시아와 교역하기 위한 영구, 안동, 대련, 뤼순 등 자유무역도시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및 독일 무역상과의 교역을 위한 치치하얼, 하얼빈, 훈춘 등 자유항도 있었다.
만주국은 일본과 독립된 분업적 교역관계였다. 영국-미국 간의 교역관계처럼 말이다.
다른 국가들과도 마찬가지 관계였다.
그랬기에 만주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1920년대에 동경으로 몰려갔다면, 1930년대에는 너도나도 앞다투어 만주로 갔다.
만주국은 그야말로 동북아의 신천지였다고 보면 맞다.
5개 북방민족의 융합을 위해서는 법치와 문화적 융합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일본 관동군은 푸이를 황제로 세워 입헌군주국 형식을 취했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 유신을 통해 쌓은 근대적 사법체계와 행정 노하우가 있었다.
만주국은 일본 관동군이 만주군벌 장쉐린을 몰아내고 세운 괴뢰국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 만주국에 사람들이 몰려왔고 다문화적 이민국으로서 경제가 놀랍도록 성장하여 일자리들이 생겼으며 높은 수준의 교육들이 이뤄졌다.
만주국은 아주 훌륭했다.
만일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하지 않았다면, 만주국은 조선과 함께 묶여 일본 연방으로서 아마도 지금 쯤 EU와 맞먹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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