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눈부신 日本의 花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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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사사건건 反日하는 사람이라도 日本을 여행해, 건축물이나 정원을 보면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또한 人間의 본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7백만 한국인 訪日관광객이란 보도는 사실상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두고 멀리 나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일이다.
그런고로 옛날에도 日本을 방문했던 많은 이들은 고고하면서도 아려한,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에 1860, 61년에 연거푸 방일했던 영국인 식물학자 로버트 포춘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이 광활한 도시는 에도만에 인접해 있어, 멀리 수평선과 맞닿아 있는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곳곳에서 정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상수리나무와 소나무 등 상록교목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다>
<어딜 가나 하나같이 아주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나그네가 쉬어가는 찻집에도 뒤뜰과 물고기가 노니는 연못이 있다>
이 발언으로 유추하면 당시의 日本人들은 정원과 花卉 가꾸기를 일상처럼 여기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거기에다 19세기는 大東亜戦争 이전이다. 도시가 초토화되고 8만이나 안타깝게 희생된 東京 대공습 이전이니, 온전히 꽃피워진 에도의 아름다움에 이방인의 눈이 어찌 형형히 빛나지 않으랴.
기록을 보면, 江戸막부의 権現으로 추앙받는 徳川家康가 화훼에도 열을 올려, 에도성 내의 2만평의 대지에 꽃밭을 만들어 미관을 즐겼다는데, 2대 쇼군 德川秀忠나 3대 德川家光도 영향을 받아 화훼는 물론이고 분재까지 심취했다고 한다.
그러니 당시의 에도는 화훼 가꾸기가 유행처럼 번져 버릴 수밖에.^^
정원이 딸린 다이묘의 거대한 저택은 말할 것도 없고, ‘나가야(長屋)’에 사는 일반 소시민들은 정원을 만들 수 없으니 아예 분재와 화초를 가꿔 현관 앞이나 방안에 두어 아름다움을 감상했던 것이다.(그 풍속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日本都市의 골목마다 집 앞에 놓인 花草의 정경은 그지없이 우아하다)
그야말로 ‘위정자와 백성’이 똘똘 뭉쳐 꽃과 나무를 통해 도시의 미관을 아려하게 꾸민 셈이었는데, 그 절정은 8대 쇼군 德川吉宗였다.
그는 수천 그루의 벚꽃 나무 묘목을 에도 곳곳에 심어 민중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요시와라 유곽에서는 매년 벚꽃 축제를 기획해 봄이면 에도성 전체가 들썩거렸다.
그런 까닭에 유럽인들이 에도를 방문하면 그 찬연한 아름다움 앞에서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깊은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포춘의 이런 형언은 과언도 아니고 무리도 아니었다.
<산골짜기와 나무가 우거진 언덕, 고즈넉한 길 양쪽으로 쭉쭉 뻗은 가로수, 여기에 상록교목의 울타리가 어우러져 있다. 아마, 이 세상 그 어떤 도시도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日本人들의 문화의식과 심미안 그리고 민도는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최고의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 근저에는 화훼를 음미할 수 있는 높은 ‘문명’이 도도히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왜냐하면 화훼 가꾸기야말로 하나의 ‘문명 척도’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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