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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추리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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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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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셜록>의 포스터(출처: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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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推理)라는 낱말을 인터넷 사전에서 검색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풀이가 나온다.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함.>


낱말 뜻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알고 있는 것”이 그야말로 핵심의 정수(精髄)다. 추리하기 위해선 먼저 그 ‘전제조건(前提条件)들을 잘 알아야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잘 안다면 누구라도 올바른 추리가 나오기 마련이다.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선생이 창조한 캐릭터 셜록 홈스(Sherlock Holmes)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양상이 바로 그러하다.


예컨대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해 보자. 현장으로 출동한 셜록이 사체가 발견된 자리와 그 주변을 면밀히 관찰하여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고 가정(仮定)하면, 이때부터 셜록의 활약은 바야흐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알아낸 <사실>을 근거로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서 생각함> 이런 자세를 보이면서 셜록이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기 때문이다. 추리의 전형적(典型的) 모습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도일의 작품이 고전(古典)으로 평가받고, 셜록이 명탐정(名探偵)으로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을 근거로 추리한다고 해서 누구라도 명탐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실을 근거로 하더라도, 그 사실이 ‘피상적(皮相的) 앎’에 불과하다면 거기서 구현된 추리는 진실의 언저리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니, 진실의 언저리에 겨우 도달해 봐야, 왜곡된 결론으로만 귀결되기 십상이다.

왜? 피상적 앎은 상투적이고 진부한 추리만 파생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얼마 전 천황(天皇)의 카퍼레이드에 뜨겁게 호응한 시민들의 경우를 떠올려보면 타당한 일례가 되겠다.


만약 누군가가 시민들이 군주(君主)에 열광하며 만세를 외치는 모습(사실)에서 그것은 시대착오적 인식이며 민주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놓으며 일부 군중이 봉건성(封建性)에 함몰되어 있다고(추리) 비판한다 치자, 이때 그의 추리는 과연 올바른 결론이며 타당한 의견일까?


일단 사실부터 짚어보자. 천황(天皇)의 국사행위(国事行為) 중 하나인 카퍼레이드(祝賀御列の儀)가 열렸던 날은 레이와(令和) 원년(2019년) 11월 10일이었다. 마침 휴일이라, 현장에는 아쉽게도 있지 못했지만, 小生은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3시부터 NHK 실황 중계를 통해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은 황거(皇居)에서 아카사카고쇼(赤坂御所)까지의 4.6km 거리를 천황(天皇), 황후(皇后)께서 탄 도요타 센추리 차량이 시속 10km의 속도로 30여 분에 걸쳐 치러진 카퍼레이드였다.


정식 명칭으로는 슈쿠가온레츠노기(祝賀御列の儀)라고 한다. 당연히 시민들과의 뜨거운 교감을 모토로 한 행사라서 일련의 즉위식 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겠다.

그 점을 입증이라도 하듯, 매 구간의 연도(沿道)에는 시민이 구름처럼 운집하여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는 장관을 보였다. NHK보도에 따르면 11만 9천여 분이나 모였다고 한다. 상황(上皇)의 카페이드 때는 11만 6천 여 분이었으니 이번 슈쿠가온레츠노기에는 3천 여 분이나 더 거리로 쏟아져 나온 셈이다.


시민들은 국기를 펄럭이며 천황폐하를 연호했고 만세를 불렀으며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환호하는 시민들의 몸가짐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웠고 표정은 즐거워 보였으며 지극히 질서정연(秩序整然)했다. 축제에 동참한 기꺼운 만족감이 거리에 가득히 차고 넘쳤다.

특히 손 국기를 흔들다가도 천황의 차량이 포착되면 너나없이 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광경은 매우 인상 깊었다.(만일 독재자의 카퍼레이드에서도 이러한 자유로운 모습이 연출될지는 의문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한 열광은 존재할지언정, 가족의 일원을 렌즈에 담으려는 것처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파안대소(破顔大笑)하지는 못할 것이다.) 여기에 동원이나 규율, 강제의 흔적 따윈 찾을 수가 없었다.


슈쿠가온레츠노기(祝賀御列の儀)가 종료된 뒤, 거리에 나온 시민들과의 인터뷰도 NHK는 덧붙였는데, 대개 그들은 진심으로 유쾌해 보였다. 일례로 어떤 여성분은 카메라에 천황의 모습이 제대로 찍힌 것을 확인하곤 활짝 웃었으며, 손자를 데리고 나온 어느 분은 소감을 피력하면서 감동에 깊이 젖어든 표정마저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풍경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을 근거로 하여,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천황을 통해 유규하게 이어져 온 문화와 역사의 자부심과 공동체와의 일체감을 크고 깊고 넓게 느끼고 있음을 小生은 침착히 <추리>한다.

그야말로 국민총화(国民総和)의 상징으로서의 天皇의 존재가 日本人들에게 어떻게 어필되는지를 가장 극적으로 역설한 것이 바로 <슈쿠가온레츠노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추리야말로 의심의 여지도 없는 진실이 아닐까?

진실이라 감히 말한다. 하나의 사례를 덧붙여 방증(傍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만요슈(万葉集)』다. 주지하디시피 만요슈는 日本에서 가장 오래된(759년경) 와카집(和歌集)이며, 日本人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아예 문학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한 번쯤은 그 이름을 들었음직한 古典 중의 古典이 아닐 수 없다. 만요슈의 연구자들은 日本人의 정서 속에 깊이 자리 잡아 있는 고전이라 아예 단언할 정도다.


그것은 전 20권의 분량인데, 와카의 지은이들은 고대의 천황부터 사민(四民)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포진되어 있다. 모든 계층의 지은이들이 <조화>를 이루며 만요슈를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국민총화와 다름없는 형상이다. 이제는 레이와(令和) 연호의 출전(出典)이 되어 바다 건너 외국에까지 그 유명세를 떨치기도 한다. 거기에 걸맞게 게재되어 있는 천황의 와카들도 매우 인상적이다. 1권에 실린 죠메이 천황(舒明天皇)을 살펴보자.


<야마토에는 산이 많고 많지만 그중에서도 아메노 가구야마 산위에 올라

온 나라 내려보니, 지평 위에는 연기 피어오르고 수평 위에는 갈매기 넘나들고

아 좋은 나라 풍요의 나라도다 야마토 이 나라는>


다음은 여성인 지토 천황(持統天皇)의 노래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온 듯하다

새하얀 빛의 빨래 말리고 있는 아메노 가구야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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