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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말~메이지 초기의 일본 사진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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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판 사진이 처음 발명된 건 1839년이지만 일본은 네덜란드를 통해 1843년에 나가사키에 사진기가 들어온 게 최초로 알려져 있다.


이 사진기는 우에노 토시노조라는 사람이 사들였고 이것의 은판 장비를 5년 후 1848년 시마즈 가의 당주이자 훗날 사쓰마 번의 번주가 되는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입수했다.


이후 나리아키라는 사진기를 측근인 이치키 시로에게 연구토록 시켰으나 감광액 등을 만들기 어려워 사진 촬영은 거의 10년이 지난 1857년에서야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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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 이치키가 찍은 시마즈 나리아키라. 일본인이 찍은 최초의 사진.


이후 일본이 개항을 하면서 나가사키 외에 여러 항구가 개항했고 사진기가 본격적으로 일본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또 서양인들이 일본에 들어와


일본과 일본인들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1860년 미국 보스턴 출신의 Orrin Freeman은 일본 최초의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했고 이탈리아 출신의 영국 사진작가 Felice Beato 역시 중국과 인도에서 일본으로 활동지를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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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ce Beato는 일본 사진사에 큰 영향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일본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한 최초의 사진 작가이기도 하며 일본 이전에는 인도와 중국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중국에서 제 2차 아편전쟁에서 연합국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1863년 일본 요코하마로 활동지를 옮긴 이후에는 일본인, 일본의 문화와 풍경을 중점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 때 찍은 사진들은 인도나 중국에서 찍어왔던 "대영제국의, 서양의 힘과 승리를 강조하는" 이전의 사진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일본에서 그는 대단히 활동적이었고 또 어떻게 일본을 찍은 사진들을 상품화할 수 있는지에 통달한 인물이었다. 그의 앨범의 사진들 대부분은 사진을 다시 손으로 채색한 것들이 많았고 사진들은 서양인들에게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사진사를 그만 둔 뒤에 일본의 그리스 영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884년에 일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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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번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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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lice Beato가 찍은 에도의 파노라마 사진)

또한 일본인들이 사진 스튜디오를 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나가사키에서 개업한 우에노 히코마(우에노 토시노조의 아들) , 현재의 요코하마에 개업한 시모오카 렌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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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일본인 전문 사진작가인 우에노 히코마는 그의 아버지가 최초로 사진기를 수입한 사람이긴 했지만 처음부터 은판 사진에 큰 흥미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원래 나가사키양생소(나가사키의대의 전신, 일본 최초의 근대식 병원)에서 화학을 배우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서적을 읽다가 습판 사진에 대해 알게 된 후 사진술에 큰 흥미를 느꼈고 친구였던 호리에 쿠지로와 습판 사진술을 습득하고 그것의 감광제에 쓸 화학 약품을 직접 만들자며 사진술을 연구하는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 때 방일 중이던 스위스의 사진 작가인 피에르 로시에로부터 습판 사진에 대해 배우기도 했다. 


히코마는 사진기의 제작에도 착수했는데 쌍안경의 렌즈로 목재형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알코올, 황산, 청산가리 등을 이용해 감광제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감광제를 만들 때 쓰는 암모니아를 조달하기 위해 날고기를 흙 속에 묻고 썩은내가 진동할 때 파내는 등의 짓을 하다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래도 이런 노력을 거듭한 끝에 감광제를 독학으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1862년 감광제 개발에 성공한 히코마와 쿠지로는 공동으로 舎密局必携라는 화학서를 출판한다. 사실 책의 내용 대부분은 네덜란드 화학 교재를 번역한 것이지만 부록으로 인쇄술과 촬영술에 대한 내용을 담기도 했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이목을 끈 후에 1862년 고향인 나가사키로 돌아가 일본인으로서 최초의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한다. 이후 명성이 자자해져 제1회 내국권업박람회에서 수상을 하고 상하이, 홍콩, 블라디보스토크의 지점을 냈으며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했다. 두 번의 세계 박람회에 작품을 출품했고 수상을 한 적도 있다.


사진 작가로서, 히코마는 일본사에서 여러 기록이 되는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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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온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


다만 이 사진은 오랫동안 그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그의 제자가 찍었다는 설이 더 유력한 것 같다.


그가 찍은 대표적인 사진은 금성의 태양면 통과 사진( 일본 최초의 천체 사진), 서남 전쟁 사진(일본 최초의 전쟁 사진)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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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전쟁 이후를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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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오카 렌조가 찍은 사진)


한편 히코마와 같은 해에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한 사람으로 시모오카 렌조가 있다. 그 역시 일본 최초의 사진 작가 중 한명이자 일본 사진계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현 시즈오카 시모다시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 화가가 되고자 했으며 네덜란드의 사진을 본 이후에 틈틈이 사진에 대해서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존 윌슨이라는 미국인으로부터 사진 찍는 법을 배웠는데 이 사람은 사진술에 필요한 약품 조제까진 가르쳐 주지 않았다.


1861년 존 윌슨이 미국으로 돌아가게되자 렌조는 윌슨의 카메라를 자신의 일본 풍경 파노라마 86장과 교환하면서 드디어 사진기를 손에 넣었다. 이후 그는 회화 공부를 포기하고 1862년 요코하마에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했다. 주로 사람의 초상화를 찍는데에 초점을 맞췄으며 1877년 스튜디오를 그만 두기 전까지 수많은 견습생을 가르쳤다. 초기에는 일본인들도 사진을 찍으면 수명이 준다 하여 사진 찍기를 꺼려해 손님들은 대부분 서양인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업이 번창했다. 


히코마가 나가사키에서 개업한 것과 달리 렌조는 요코하마, 즉 에도와 가까운 곳에서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했기 때문에 사회에 미친 영향은 이 쪽이 더 크다고 여겨진다. 그의 제자로는 요코야마 마츠사부로, 우스이 히데사부로 등등이 있는데 모두 일본 사진사에 이름을 남긴 사진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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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홋카이도에서도 사진 작가가 나타난다. 기즈 고치키라는 사람인데 원래 이 사람은 짚신 장인으로 사진술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데 하코다테가 개항하고 러시아 초대 영사였던 고시케비치가 옷의 재봉을 그에게 의뢰한 일이 있었는데 고치키는 옷을 처음 재봉해보는 거였음에도 고시케비치가 만족감을 보일 정도로 일처리를 잘했다. 이 일로 하코다테의 외국인들이 모두 그에게 재봉을 맡기면서 그는 재단사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후 그는 사진기를 보고 크게 흥미를 느껴 번 돈으로 사진기를 사서 1864년 하코다테에 사진 스튜디오를 개업했다. 이후 1869년 도쿄로 이주해 사진관을 개업했고 천황의 사진을 찍은 우치다 구이치와 이름이 동격으로 배열될 정도로 원로 사진작가로서 대우받았다.


이 밖에 비교적 덜 알려진 초기 사진작가로는 카메야 토쿠지로, 요헤이 호리 등이 있는데 토쿠지로는 데지마에서 사진을 배웠고 이후에 조선인들에게 사진술을 알려주기도 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서양인으로부터 사진술을 배우거나 독학한 1세대 사진가들이라고 친다면 거의 동시대에 그들의 제자들 역시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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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할 사람은 우에노 히코마의 제자인 토미시게 리헤이이다. 


일본 습판 사진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나가사키에서 상인으로 활동하나 성공하지 못했고 1862년부터 토쿠지로에게 사진술을 배우기 시작한다. 


1862년에 토쿠지로가 교토로 떠난 후에는 우에노 히코마의 밑에서 사진 공부를 계속 했으며 이후 고향인 야나가와로 돌아가 자신의 사진관을 개업했다.


그러나 개업한 사진관이 흥하지 않아 다시 토쿠지로 밑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1870년에 다시 구마모토에서 사진관을 개업한다.


이 때 군에선 그에게 구마모토 성의 사진을 찍어줄 것을 의뢰했는데 몇년 후 서남전쟁으로 구마모토 성이 파괴되면서 이 사진은 구마모토 성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진이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군인과 장교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사진 작가가 되었고 나쓰메 소세키,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왕 등의 유명 인사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그가 운영했던 사진관은 대를 이어 현재까지도 구마모토에서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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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마츠사부로라는 사진 작가도 있다. 에토로후 섬 출신으로 그림과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러시아 영사관을 통해 러시아 화가의 조수로 일하며 서양화를 배우고


사진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후 사진술을 더 배우고 싶어해 홍콩행 무역선을 타고 스승을 찾아 떠났지만 딱히 해외에서 적절한 사람을 찾진 못했고 귀국 후 시모오카 렌조로부터 인화법을 배우고 하코다테로 돌아간다. 그의 작품은 1873년 비엔나 박람회에서 발표되기도 했다.


그는 에도성을 비롯해 여러 일본의 중요 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겼는데 그 덕에 그의 사진들은 여럿이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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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촬영한 도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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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구이치는 최초로 천황의 사진을 찍은 사진 작가이다.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천황을 촬영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나가사키 출신으로 우에노 히코마로부터 사진을 배웠으며 1865년 오사카에서 모리타 라이조와 함께 사진관을 개업했다.


그의 사진관은 이후 요코하마, 그리고 후에 다시 도쿄로 옮겨지는데 도쿄에서 최고의 사진 작가로 명성을 알리게 된다. 


이러한 명성 덕에 그는 메이지 천황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천황이 일본 중부와 규슈를 순행할 때 동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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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촬영한 하루코 황후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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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하던 서양인들에게는 요코하마 지역의 사진이 유명했다. 


요코하마 사진은 일본의 풍경과 일본인, 특히 일본의 여성, 그리고 일본의 문화를 중점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이러한 사진은 서양인들에게 기념품으로 대단히 가치가 있었던 것인데, 이런 요코하마 사진작가로 가장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쿠사카베 킴베이다.


1863년 요코하마의 Felice Beato의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일하다가 1881년에서야 자신의 사진관을 개업한다. 1904년에는 만국박람회에 작품을 출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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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들




사진을 찍는 것이 점차 활발해짐에 따라 1876년 일본은 사진 저작권에 대한 법률을 처음으로 제정했다. 


같은 해에 육사에선 사진에 대한 교육이 실행되었고 1889년에 일본 최초의 사진 단체인 일본사진협회가 창설된다.(현존하는 단체랑은 다름)


1894년에는 일본 최초의 사진전문학교로 불리는 사진강습소가 설립되는 등 서양의 첨단 기술로 여겨졌던 사진술은 그렇게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기록 수단이자 문화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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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꼬긁님의 댓글

  • 꼬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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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보이는 사진 속에서도 수많은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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