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의 몇가지 얘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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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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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도시대의 교통사고
에도막부는 대도시로 거듭난 에도에서 많은 문제점에 맣닥뜨리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교통사고였다.
1701년 집계된 수레만 1만 2239량이었었다.
가속이 붙은 수레를 멈추기란 힘든 것, 특히 언덕 부근에서 사고가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으로 부대끼는 에도 번화가에서 수레란 정말 자동차와 같은 것이었다.
막부는 결국 규제에 나선다. 에도 막부는 차간 거리 설정, 적재량 제한, 좁은 골목에서 주차금지 같은 도로교통법에 통하는 규칙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인간은 매를 맞지 않고는 말을 듣지 않는 법, 결국 줄어들지 않는 사고에 1716년 형을 만들게 된다.
교통사고로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자에 대해서 사형 또는 유배형을 선고하게 된 것이다.
이 법은 더욱 강화되어 1742년엔 재산몰수까지 추가하였다고 한다.
2. 에도시대의 상하수도 시스템.
100만의 도시를 우물로 해결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자연스레 상수도 시스템이 탄생하였으며 수도관은 중국, 로마와 달리 목재가 재료였다.
타마가와 상수도는 지금까지도 명성이 전해지고 있다.
높낮이(고저차)를 이용한 시스템이었으며 오물을 처리하는 하수도 시스템 역시 체계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오수 처리장 같은 건 없고 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다만 재료가 나무인 만큼 시간이 흐르면 썩기 때문에 유지비용이 상당했다고 한다.
3. 에도시대의 치아 관리
당시에도 군것질이란 것을 하였기 떄문에 에도의 사람들도 충치를 역시 겪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충치가 생긴 부분을 깍고 그 부분을 메꾸는 것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 했기 때문에
치과에 가더라도 이빨을 뽑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만 시술(?)시 사용되는 진통제가 존재하였으며 틀니의 개념과 이를 만드는 전문 장인들도 존재했었다.
원래는 불상 조각가들이 이들의 시조이며 재료는 나무이지만 정교하게 만들어 금속 스프링을 넣어 옆의 치아에 걸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치아의 뒷면에 구멍을 뚫어 실을 통해 묶는 방법도 있었다고.
또한 이 시기 이미 일본인들은 칫솔과 치약을 가지고 있었다.
길이 12~18cm의 버드나무와 삼나무 대나무 등으로 만든 칫솔을 사용했다.
치약의 재료는 박하, 고추, 정향등을 섞은 양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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