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파냐 함대를 물리치고, 태국 왕국 국왕이 된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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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나가마사는 현재 시즈오카 현 중앙부 지역의 구 명칭인 스루가 국(駿河國)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누마즈 번(沼津国)의 번주였던 오쿠보 다다스케(大久保忠助)의 가마꾼이었으나, 1611년 경에 슈인센(朱印船)을 타고 현재의 태국으로 넘어갔다.
당시 태국의 도시인 아유차의 동남부에 일본인 거류지인 "방이푼"(日本町)이 있었고, 이곳에 다수의 일본인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기이 규에몬(紀伊右衛門)이라는 사람을 리더로 하여 샴 정부의 우대를 받고 있었다.
나가마사도 그곳에서 재능을 인정받아 점점 두각을 드러냈고 규에몬에 이어 니혼마치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는 태국 사절이 일본을 방문할 때 부하를 파견하여 막부 요직자들에게 책이나 선물을 바치는 등 양국의 국교 친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자신도 상선을 직접 일본에 파견하여 무역을 했다.
나가마사는 1626년 태국의 고위직에 올라 외교 및 무역 활동을 했으며,
아유타야 항구를 공격해 온 에스파냐 함대를 두번이나 격퇴하고 동인도 회사를 철수시킨 이력이 있으며,
태국의 왕위 계승과 관련해 일본인을 이끌고 반란군을 진압, 왕자를 즉위시키기도 했다.
나가마사는 아유타야에서 훨씬 남쪽에있는 리고루라는 왕국의 내란을 진압
리고루의 내란을 평정 한 나가 마사는 리고루 왕 (六昆王) 에 임명되었다.
리고루 왕이 된 것도 잠시, 연호 7 년 (1630)의 아유타야에서 시워라원이 국왕을 살해하고 왕이 되었다.
이를들은 나가 마사는 시워라원의 폭주를 막기 위해 아유타야에 가려고 했지만 침입 해 온 이웃 왕국 군과의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한다.
상처를 달래려고 바른 연고에 독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나가마사는 41살에 죽었다. 아마 배신당한 것 같다.
나가마사가 죽은 후 일본인 마을은 시워라원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https://mag.japaaan.com/archives/96206
지브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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