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유지군이 애국국까이거나 좌익으로 보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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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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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말하자면 유지군은 제 삼자가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예전 근갤에서 얼치기 누군가가 유지군에게 좌익이란 딱지를 붙이더니 그 기세로 マッカーシズム을 일으켜 어이가 없어 실소했던 적은 있습니다만 어떠한 프레임으로 누군가를 규정하거나 레테르를 붙이는 행위 따위는 실로 가소로운 일입니다. 人間이란 존재에 대한 고찰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런 행태들은 그저 얼치기의 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유와 규제.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대중과의 소통을 매개로 하는 갤러리 활동에 있어서 게시판의 공적 기능을 염두에 둔 규제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가 개인의 블로그가 아니기 때문에 규제 기능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게시판 도배>나 <인신공격> 따위의 분탕질이 아닌 게시물에 대해서 삭제와 차단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여기는 <日本>을 테제로 하는 갤러리입니다. 당연히 반일의 논리를 들고 오는 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열린 자세로 그것을 경청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서로 간에 견해를 나누고 결론을 도출시켜 제각각 해석을 내리면 됩니다. 그것이 소용없는 시간 낭비라고 말씀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나, 분명히 깨우치게 되는 분들도 나타나게 됩니다. 반일교육을 받았던 당신이 親日이 되는 것처럼요.
세계의 수맣은 사람들 모두가 하나의 モットー로 무장되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국뽕이나 파쇼, 민족사회주의자 따위가 그런 맹신으로 이견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습니다만, 이견이 있는 게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내 견해가 소중한 것을 인식하는 분은 타인의 견해에도 정중히 경청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열린 자세입니다.
여기는 국뽕의 소굴이 아닙니다. 이념에 눈먼 얼치기들이나 증오에 눈뒤집힌 嫌韓의 소굴도 아니라 믿습니다. 자유를 지키려 하는 합리적인 <親日의 소통 장소>라고 믿으려 합니다. 이치가 정말 그러하다면 여기는 누구든지 日本을 소재로 글을 게재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분탕질이 아닌데도 글의 주제로 삭제와 차단을 일삼는 게시판도 다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건 참으로 가증스러운 현상이지요.
허나 다른곳에서 그런다고, 日本을 테제로 하는 이곳마저도 주제에 따라 글을 삭제하는 짓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니! 공지에 걸린 “반일글은 경고와 동시에 차단한다는 경고”에는 정말이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것처럼 놀라고 말았습니다.
많이 우려됩니다. 부디 그 방침을 바꿔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기가 日本을 테제로 하지 않은 게시판이라면 관심도 두지 않겠습니다만,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日本갤러리>이니까요.
물론 정직히 말하자면 반일의 글에는 무던한 유지군도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쾌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얼치기가 아닌 유지군은 논리와 팩트로 그의 견해를 논파하려 합니다. 논쟁은 곧 소통의 과정이니 그것을 귀찮게 생각지 않고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토론하려 합니다.
보편적인 기준이 설득력을 배가시킵니다. 응당 분탕질이 아닌 “논거가 있는 반일의 글”은 석제될 이유가 없습니다. 외연 확대를 위해서도, 국뽕을 논파할 즐거움을 여기를 사용하는 논객들이 누릴 수 있도록 관리자 분들의 시선이 환기되기만을 마음 깊이 仰望합니다.
“아래는 예전 역갤에서 국뽕 누군가에게 강의한 내용입니다. 차제에 재록하오니 부디 국뽕들을 깨부수는 논파의 즐거움을 빼앗지 마십시오.”
<아래, 세계속한국인이 日本은 문물이 미개해 메이지 유신이 성공했다는 기가 막힌 얘기를 하길래 실소를 했다가 참,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정말로 어그로를 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거 뭐라고 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건 조금만 공부하고 사색을 하면 당대 日本의 역량을 알 수 있을 텐데, 인간적으로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하여 그를 위해 에도시대의 단면 하나를 얘기하겠다. 진지하게 들어주면 고맙겠다.
극장(劇場)은 경제와 문화의 척도다. 왜냐하면 문화를 소비하는 수요가 창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문화가 호화로웠다는 것은 그것을 소비하는 수요층이 탄탄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문화 생산층’의 질을 높이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탄생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잣대는 그대로 日本에 적용된다. 日本에 극장이 출현된 시기는 무려 무로마치 시대였다. 노(能) 공연장이 그 원형이었다. ‘노’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가면음악극이다. 간아미와 제아미의 연기가 실로 일품이라 당시의 쇼군 요시미쓰까지 탄복시켜 ‘노’에 대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은 유명한 얘기다. 그리하여 문화의 대중화가 마침내 시작되었던 것이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극장 일람표를 보면 1800년대 초까지 日本전역에는 근대식 극장이 132곳이나 성황이었다고 한다. 즉 에도시대가 되면서 극장은 귀족이나 무가 신분의 사람만이 아닌, 중산층과 서민에 이르기까지 온 계층이 수요의 대상이었다는 얘기다.
노는 물론이고 가부키와 닌교조루리가 대표적 장르였다. 에도와 오사카, 교토에는 막부가 승인한 대극장이 늘어섰고 주변에는 음식점들로 넘쳐났다. 막부의 서민들은 가부키를 보고 근처의 식당에서 술과 요리를 즐기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떠들었던 셈인데, 가장 유명했던 배우로는 에도의 이치가와 단주로, 오사카의 사카다 도주로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엄청난 흥행작품의 경우 그것에 관련하여 출판물도 역시 쏟아져 나와 대중의 소비를 촉진시켰다는 얘기다. 에도나 오사카에서의 ‘대중출판물’의 왕성한 열기에 대해선 조선통신사들도 경탄하는 기록을 남긴 바 있다.
그러므로 日本의 극장가는 음식점, 유흥시설(이를테면 미세모노 공연장-돈을 받고 진기한 동물이나 마술 등을 보여주는 시설)도 즐비한 요즘으로 치면 번화가였다고 할 수 있다.
에도 시대에 日本은 이미 서민대중의 문화가 만개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눈부신 문화의 저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적인 일본문명이 유럽과 필적할 수밖에 없는 좌표다. 당대의 이조(李朝)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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