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행록의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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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행록의 고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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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日記) / 계사년(1713, 숙종 39) 1월
8일
[DCI]ITKC_BT_1417A_0040_030_0080_2004_003_XML DCI복사 URL복사
맑음. 옥하관에 체류하였다.
호인 장사치의 왕래가 날로 많아져 시끄럽고 북적북적하니 매우 괴로웠다. 《관안(官案)》을 얻어 보니, 영고탑(寧古塔)에 도통 장군(都統將軍)과 부도통(副都統) 2인이 있었고, 성경(盛京)ㆍ흑룡강(黑龍江) 등 지방에도 도ㆍ부통 3인이 있어 병권(兵權)을 전관(專管)하는 것이었다. 도원수(都元帥)가 1품이고 각로(閣老)는 정2품인데, 원래의 수는 6인이었다 한다. 그런데 현재는 5인으로 온달(溫達)이 수석(首席)이다. 품계(品階)는 좌석(坐席)을 표로 하여 1품 좌석은 끝이 검고 바탕은 붉으며, 2품 좌석은 1품 것과 서로 반대이고, 3품 좌석은 전부 홍색(紅色)이다. 또 3품 이상은 등자(鐙子) 위에 자수정(紫水晶)을 꽂고, 1품이면 진주를 더 박으며, 3품에서 6품 이상까지는 청수정(靑水晶), 9품 이상은 백수정을 박는다 한다. 겨울철에는, 1품은 토종의 호피(虎皮) 좌석에 앉고, 2품은 낭피(狼皮), 3품 이하는 잡피(雜皮) 좌석에 앉는다고 한다. 또 들으니 이상한 재주가 있거나 술업(術業)을 아는 사람은 임금이 반드시 의심하므로 모두 자취를 감춰서 이름이 드러난 자가 없다 한다. 또 만족(滿族)이나 한족(漢族)으로서 공경(公卿)은 거의 화장하지 않고 광중(壙中)에 온돌을 만들며 옆에 통래(通來)하는 구멍을 뚫어서 수직하는 사람이 드나들며 촛불을 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옛날 고려장(高麗葬)과 같은 것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이익성 (역) | 1976
여기 나오는 고려장은 구덩이를 파고 온돌을 깔고 통하는 통로를 열어두어서 노인을 거기 놔둬서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게하고 수직하는 사람이 교대로 왕래하며 촛불을 켜는걸 말함.
물론 음식도 놔두는 것이므로 보통 아는 고려장과는 좀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