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도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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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사풍후미나모..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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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도의 진실
(출처 : 일본 측 기록)
(竹島紀事 元祿 6年 5月 13日) (#우루친토#부룬세미)
올해도 그 섬에 벌이를 위해 부산포에서 장삿배가 3척 나갔다고 들었습니다. 한비치구라는 이국인을 덧붙여 섬의 형편이나 모든 것을 해로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지켜보도록 분부했으므로 그 자들이 돌아오는대로 추후에 아뢰겠으나 먼저 들은 바에 대해여 별지 문서에 적겠습니다.
‘두렵게 생각하면서도 적은, 구상(口上)의 각서’
1. 부룬세미의 일은 다른 섬입니다. 듣자하니 우루친토라고 하는 섬입니다. 부룬세미는 우루친토보다 동북에 있어, 희미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1. 우루친토 섬의 크기는 하루 반 정도면 돌아볼 수 있는 크기라고 합니다. 높은 산이며 논밭이나 큰 나무가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1. 우루친토는 강원도 에구하이란 포구에서 남풍을 타고 출범한다고 듣고 있습니다.
1. 우루친토에 왕래하고 있는 건은 재작년부터임에 틀림없습니다.
1. 우루친토로 왕래하고 있는 일은 관아에서 모르고 있고, 자기들 생계를 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한비차구가 돌아오는대로 물어 다시 상세한 것을 아뢰겠습니다.
(화자 일본인)
---6월 1일 돗토리 성하 도착
---6월 7일 나가사키행 출발
---6월 그믐 나가사키 도착
2) 『竹島紀事』元祿6(1693)年6月 (#무루구세무#다케시마)
(에도막부의 명을 받은 쓰시마 번에서 온 留守居 하마다 겐베(濱田源兵衛)가 안용복과 박어둔을 심문했다)
1. 조선국 경상북도 동래군 부산포의 안요쿠호키와 울산의 박토라히라는 자입니다. 우리들은 울산이라는 곳에서 다케시마라는 곳으로 전복이나 미역을 따러 3월 11일에 출범해 25일에 영해(寧海)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영해를 27일 아침 진(辰)시에 출발해 유(酉)시에 다케시마로 도착했습니다. 전복이나 미역을 따려고 머물고 있었는데, 일본인이 4월 17일에 우리들이 있는 곳에 와서 옷과 보따리를 가지고 우리 둘을 그들의 배에 태우고 즉각 오 (午)시에 출범하고, 돗토리에는 5월 1일 미(未)시에 도착했습니다. 항상 다케시마에는 전복이나 미역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배에 열 명이 타고 영해까지 왔는데 10명 중의 한 사람이 병들었으므로 영해에 내려두고 아홉 명이 타고 다케시마로 왔습니다. 열 명 중 아홉 명은 울산사람 한 명은 부산포 사람입니다.
1. 우리들이 탄 배와 유선(類船)은 세 척이고, 그 중 한 척은 전라도의 배라고 들었습니다. 그 인원은 17명이 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척은 15명이 탔고 경상도의 가덕(加德)이란 곳의 사람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일본 배에 잡혀 왔으므로, 그들이 즉각 조선에 돌아갔는지 전후의 일은 모릅니다.
1. 이번에 우리가 전복을 따러 온 섬은 조선국에서는 무루구세무라 합니다. 일본 땅 다케시마라고 불린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습니다.
1. 이번에 여기까지 올 때 경호하는 사람들에게 접대를 잘 받고 왔습니다. 옷감이나 목면, 의류 등도 받았습니다. 상세한 것은 이나바에서 구상서에 말한 바와 그대로입니다.
1. 우리들은 언제나 좋은 운수를 빕니다.
1. 바쿠토라히는 34세, 안요쿠호키는 40세입니다. 그런데 이나바에서 43세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말이 잘 통하지 않아 틀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화자 조선인, 막줄만 일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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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3일 쓰시마 이송
3) (竹島紀事 元祿 6年 9月 4日 ‘朝鮮人口書 안용복의 쓰시마번의 취조)
대부분 나가사키 공술과 비슷하나 아래에 새로운 사실 추가
・ 배에 탄 아홉 명의 이름이나 출신지. 안용복 이외는 울산 출신.
・ 영해와 무루구세무(무릉섬)간의 거리는 50리(200km).
・ 작년, 울산의 긴바타이등 20명이 그 섬으로 건너갔다. 이번에는 긴바타이의 안내로왔다.
・ 경상도 가덕의 배는 두 명이 예전에 온 적이 있다.
・ 그 섬(무릉섬)이 일본 것인지, 조선 땅인지는 전혀 모른다.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 땅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다.
・ 돗토리를 출발해 26일에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도중 곳곳에서 좋은 접대를 받았다. 밥은 된장국에 7, 8접시의 요리가 나왔다. 둘 다 가마에 태워져 나가시키에 왔다.
(마지막 항목 ’돗토리를 출발‘은 일본인 서술자 지식. 진술에는 에도라 함)
(화자 조선인)
4) (竹島紀事 元祿 6年(1693) 11月 1日)(쓰시마) (#모루겟소요#우산도)
인질이 여기에 머물러 있을 당시 질문했을 때 대답한 것으로 “이번에 나간 섬의 이름은 모릅니다. 이번에 나간 섬의 동북에 큰 섬이 있었습니다. 그 섬에 머물던 중에 두 번 보았습니다. 그 섬을 아는 자가 말하기를 우산도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대체로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로 보였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울릉도란 섬에 대해서는 아직껏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질의 주장은 허실을 가리기 어려우니 참고로 아룁니다. 그 쪽에서 잘 판단해 들으십시오
* 안용복은 울릉도 동북쪽 죽도를 우산도라 불렀다.
* 독도는 동남쪽이다.
* 안용복은 독도는 보지도못하거나, 관심도 없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