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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약자가 선하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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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ㄴㄹ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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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독소 불가침조약에 따른 폴란드 분할 당시,


폴란드에 속하던 서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이 합병한다.


서부의 우크라이나인들은 2차 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에 협력하여 유대인들과 폴란드인들을 상대로 제노사이드를 벌였다.


폴란드인은 폴란드 정부에서 동화를 강요했으므로, 유대인은 경제의 대지분을 차지했으므로 불만을 가졌다.


이후 독소전쟁으로 독일이 전전의 폴란드 동부 영토로 밀고 들어오자


해당 지역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이에 협력하여 해당 지역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에 적극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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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리비우 게토에서 촬영된 사진 유대인 여성이 폭도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



유대인들이 싸그리 절멸당한 후에는 1943년 봄부터 600년가량 함께 살아오던


볼히니아와 갈리치아 일대의 폴란드인들을 상대로 대량 학살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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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무슨 사진이냐면


우크라이나 전 대통령에 반하는 시위 하다 경찰 발포에 죽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다.


무슨 80 90 년대 일어난 일도 아니고 2014년에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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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특수부대인 베르쿠트가 시위대를 공격하는 것이 생방송되는 모습.



시위를 주도한 유리 베르비츠키 타라소비치는 납치당한 뒤


무려 고문사한 시체로 발견됐다. 다시 말하지만 80년대 얘기가 아니다.


2014년 1월 18일에 그의 시체는 발견되었다. 


사망자는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


심지어 교수형(그렇다. 시위 참가자를 가로수에 목매달아버렸다) 까지 집행했다.


최악의 유혈사태는 20일 벌어졌는데, 시위 참가자 47명이 목숨을 잃었다.


2월 23일까지 80명 이상의 시위대가 경찰의 발포로 사망했고, 특히 저격에 의한 사망자는 20명 이상이 집계되었다


이때 야누코비치 정부는 군 부대를 진압에 투입하려 하였으나


군이 진압작전에 투입되면 사태가 악화되기에 폴란드 외무장관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푸틴이 전화를 걸어 군병력 투입에 반대했다고 한다.


결론은 우크라이나 사람들 역시 자기들이 힘을 갖추고 갑의 위치에 있었을 땐


잔악한 가해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약자가 절대 선이라고 착각해선 안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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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너무심하다님의 댓글

  • 너무심하다
  • 작성일
자 우크라이나 저대통령 시위대에 발포한시기의사람 친러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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