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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한국여성이 직접쓴 일본장교와의 사랑이야기.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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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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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젊은 여자애였다. 사랑도 했다.
어느 저녁 이미 몇명의 병사를 상대하고 난 뒤였던것 같다. 방밖으로 나와서 달을 보며 울고 있었는데 「야마다 이치로」가 서있었다. "조선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그렇겠지 이런곳에 와서 힘들지 나도 내일 최전방에 가게됐다. 부모님께 받은 이 목숨을 드디어 버려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일본인이니까 어쩔수 없지...그렇지만 당신은 조선인이니까 죽지는 마.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가서 효도해"라고 했다.
우리는 둘이서 같이 울었고 함께 방으로 돌아가 술을 마시며 진심으로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2,3개월 후 「야마다 이치로」의 부대도 돌아왔다. 다행히 「야마다 이치로」는 무사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위안소로 와주었다.우리들은 서로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런 날은 마츠모토의 공인 하에 위안소 전체가 야단법석이 되어 임시 휴업을 했다. 우리들도 그 자리에서 1원씩을 내서 잔치 준비를 도왔다. 우리들은 서로를 스짱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위안소에서는 연애를 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불렀다. 우리들은 대체로 스짱이 한사람씩 있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하자 다른 병사들이 질투했다. 내 주의를 끌기 위해 먹을 것이나 작은 선물을 가져온 병사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다 귀찮았고 괴로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사이가 군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야마다 이치로」가 내방에 와 있을 때에는 다음 병사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거나 해서 배려해 주는 일도 있었다.
주위에는 몇천명의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때 나에게는 「야마다 이치로」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순수했고 세련됐고 친절했고 익살스럽고 거기다 똑똑한 남자였다. "
어느 저녁 이미 몇명의 병사를 상대하고 난 뒤였던것 같다. 방밖으로 나와서 달을 보며 울고 있었는데 「야마다 이치로」가 서있었다. "조선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나는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그렇겠지 이런곳에 와서 힘들지 나도 내일 최전방에 가게됐다. 부모님께 받은 이 목숨을 드디어 버려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일본인이니까 어쩔수 없지...그렇지만 당신은 조선인이니까 죽지는 마.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가서 효도해"라고 했다.
우리는 둘이서 같이 울었고 함께 방으로 돌아가 술을 마시며 진심으로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다. 2,3개월 후 「야마다 이치로」의 부대도 돌아왔다. 다행히 「야마다 이치로」는 무사했다. 돌아오자마자 바로 위안소로 와주었다.우리들은 서로 끌어안고 기뻐했다. 그런 날은 마츠모토의 공인 하에 위안소 전체가 야단법석이 되어 임시 휴업을 했다. 우리들도 그 자리에서 1원씩을 내서 잔치 준비를 도왔다. 우리들은 서로를 스짱이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위안소에서는 연애를 하게 되면 다들 그렇게 불렀다. 우리들은 대체로 스짱이 한사람씩 있었다.
내가 연애를 시작하자 다른 병사들이 질투했다. 내 주의를 끌기 위해 먹을 것이나 작은 선물을 가져온 병사도 있었지만 그런 것이 다 귀찮았고 괴로웠다. 그러다 보니 우리 둘사이가 군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 「야마다 이치로」가 내방에 와 있을 때에는 다음 병사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거나 해서 배려해 주는 일도 있었다.
주위에는 몇천명의 남자들이 있었지만 그때 나에게는 「야마다 이치로」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순수했고 세련됐고 친절했고 익살스럽고 거기다 똑똑한 남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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