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메기
작성자 정보
- 59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83 조회
- 3 댓글
본문
메기는 일본 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칙칙한 색깔과 특유의 수염, 미끈미끈한 외형이 특징으로 지진 감지능력이 뛰어나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물 밖으로 튀어오르는데 이 탓에 일본에선 예로부터 "지진을 감지하는 물고기"로 취급받았고 동시에 지진을 일으키는 "괴물 메기"가 존재했다고 믿었다.
우선 먹었다. 메기는 고대부터 식용으로 쓰여 왔다. 12세기에 쓰여진 곤자쿠모노가타리슈와 우지슈이모노가타리와 같은 설화집에서 아버지가 메기로 환생한 걸 알고도 메기를 잡아먹은 이야기와 메기 요리의 요리법과 상업적인 거래에 관한 내용 등이 나와 있다. 요리법에 대해서는 살코기를 잘라 냄비에 넣어 끓였다고 나온 것을 보아 국물 요리로 자주 먹은 것으로 보인다.(환생한 아버지 메기 먹은 놈은 목에 가시가 걸려 죽었다)
이후 본조학과 관련해서도 메기에 대한 내용이 여러 차례 나온다. 1697년에 저술된 본조식감(本朝食鑑)에선 메기에 대해 맛이 좋지만고 나마스나 어묵 정도로 이용된다고 나오고 독일계 네덜란드인이자 데지마의 의사로서 일본을 연구했던 지볼트의 일본동물지에선 메기에 대해 식용으론 잘 이용되지 않고 약용으로 더 이용된다고 언급이 된다. 아마 이 때쯤에 별로 흔한 음식 재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만 현대에도 일부 일본 지역에선 메기를 향토 요리로 홍보하곤 하는데, 사이타마현 요시카와시는 역 앞에 메기 기념물을 세우고 메기 요리를 꽤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요시오카 온천의 메기 향토 요리 등이 유명하다. 사이타마현에선 1970년대부터 메기의 양식을 시도 중이며 오사카 긴키 대학에서는 장어맛이 나는 메기를 양식하는 것을 목적으로 메기를 기르고 있다.
무로마치 시대에 메기는 선문답에서 사용되는 회화 표점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그림은 일본 묵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조세츠가 그렸는데, 당시 무로마치 막부 4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요청을 받고 그렸다.
그림에서 한 남성이 주둥이가 좁은 표주박을 가지고 큰 메기를 잡으려 하고 있다. 병도 메기도 미끌미끌한 데다가 병의 입구가 좁기까지하여 메기를 잡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불가능한 상황을 보여주며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공안이다. 요시미츠 쇼군은 호리병으로 메기를 잡는 것을 자신의 화두로 삼아 정진하였는데 일본의 이름있는 선승 31명을 초대해 저 그림을 보여주며 표점도를 보고 느낀 감상을 시로 제출하게 하였다.(시화축이라고 한다)
메기는 지진 감지 능력이 뛰어난 어류이다. 일본 도쿄수산시험장은 메기를 가지고 16년간 실험을 진행했는데 실험 결과에 의하면 메기는 지진 발생 10일~3일 전에 물 밖으로 뛰어오르며 날뛸 정도로 지진에 예민하다. 이 덕에 메기는 예로부터 지진의 징조인 불온한 물고기이자 동시에 지진을 일으키는 메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다수 있었다.
초기 일본에서 지진을 일으키는 생물은 용이었다. 그러나 곧 우주 물고기로 또 다음에는 "괴물 메기"가 지진을 일으키는 동물로 여겨졌다. 전설에 의하면 괴물 메기는 평소에 일본 땅 속에서 살다가 이 메기가 화가 나 꿈뜰거리면 지진이 일어난다. 이런 지진과 메기가 엮인 얘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지에서 처음 등장한다. 히데요시가 1592년 교토에서 새로운 성을 쌓으려 했는데 이 때 행정관에게 보낸 편지에 "메기로 인한 지진 대책을 생각하며 성을 건축하라"고 적혀 있다.(해당 성은 후시미성, 모모야마 성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4년 후에 지진으로 무너졌다.)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에도 대지진 후에 승천하는 건 용이 아니라 메기 라는 내용이 나온다. 1855년 에도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에는 메기와 관련된 그림이 엄청나게 등장하는데 역시 메기가 지진을 일으킨다는 설화와 관련이 있다. 300 종에 가까운 그림들이 나왔는데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막부의 허가를 받지 않은채 출판되어 작가에 대해 알려져 있지 않다.
(사진에서 메기를 누르고 있는 사람은 일본 신화의 카시마 신. 메기를 누른 돌은 카나메이시라 하여 메기를 봉인하는 도구이다)
이런 그림들이다. 괴물 메기를 벌하는 그림들이 다수였으며 일반 서민들도 지진을 막기 위해 메기 그림을 집에 걸었다고 한다.
메기는 지진을, 노인은 아버지를, 나머지 둘은 번개와 화재를 상징한다.
지진을 일으킨 탓에 혼나고 있는 메기들
메기와 메기를 벌하는 사람들(메기를 패는 사람들은 유곽의 사람들이다.)
맥락이 조금 다른 그림이다. 이번에는 메기가 지진 후 도시 재건에 필요한 도구들을 들고 있다.
지진이 일어나도 다시 재건하여 일어설 거라는 사람들의 의지를 표현한 그림이다.
메기들이 재건 작업에 몸소 참여하고 있다. 건축이나 가구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이런 그림들을 선호했으며 메기에게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는데
그들 입장에선 지진이 떼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이다. 그림은 그런 상황을 풍자한 것
지진은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지만 동시에 소득의 재분배와 새로운 투자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림은 그런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메기는 일본에서 지진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로 지진을 알려주는 앱이 마스코트로 메기를 사용하고 일본 최고 지진 연구 기관인 도쿄대학 지진연구소의 마스코트도 아직까지 메기이다.
간다마츠리에선 돌로 누른 거대 메기 모형이 지금도 등장하는데 2005년에 214년만에 축제에 다시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진을 제외하고도 메기에 관한 전승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치시마 섬에 있는 츠크부시마신사에선 메기가 용으로 변신해 섬과 신사를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취급되어 메이지 전까지 메기를 잡는 것이 불법이었다고 하며, 구마모토현 아소 신사에서도 메기가 신의 사자로 믿어져 포획과 식용이 금지되어 있다.
그 외에 오가키 마츠리에서 호리병으로 메기를 잡는 인형들이 나오고(전에 말한 그림과 관련이 있다) 시라히게 신사의 제례 행사에서도 메기가 나온다.
현재도 일본의 여러 기념품들에서 메기 모양을 볼 수 있고 일본 황실에서 "메기"가 연구 대상으로 다루어지는데 후미히토가 메기를 연구 소재로 삼았다. 사진은 후미히토의 약혼 반지가 된 모델인데 메기 모양이 있다. (후미히토는 메기 전하라는 별명이 있기도 함)
ㅇㅇ님의 댓글
ㅇㅇ님의 댓글
킴취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