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베는 게 사무라이라면 사랑의 미련은 왜 베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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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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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드 <안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いつかこの恋を思い出してきっと泣いてしまう> 덕분에 아리무라 카스미(有村架純)와 주제가 <明日への手紙>에 푹 빠져 있다.
스기하라 오토를 연기한 그녀의 표정은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을 것 같다. 특히 8화의 말미에서 소다 렌과의 대화에서 보여주는 표정은 정말이지 심금을 울린다. 뭐랄까, 정말로 연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선연한 얼굴이다. 그런 표정은 표독스런 이기심에 젖어 있는 사람은 절대 나올 수 없다. 표정에는 그 사람의 내면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善하다. 그건 아름답다.
주제가 <明日への手紙>도 마찬가지다. 노랫말 자체가 삶과 사랑에 대해 사색시키는 힘이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듣고 있노라니 문득 아주 옛날에 읽은 책의 한 구절도 생각났다.
제목이 기억나지도 않고 작자도 모르겠지만 만주사변 이후 지나에 출정하는 일본군에 대한 얘기였는데, 열도에 두고온 연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 흘리며 노래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적을 베는 게 사무라이라면 사랑의 미련은 왜 베지 못하나>
가만히 곱씹어 본다. 역시 의미가 중첩되어 인상적이다. 사랑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까. 제 아무리 대의에 목숨 걸고 나서는 전사(戦士)라도 이 노래의 한 소절처럼 사랑의 미련에는 자유롭지 못할 듯싶다. 그게 전사 이전의 인간 모습이리라.
사랑에 관한 노래를 듣다보니 깊은 밤에 어울리는 정서에 젖어든 셈인데, 이 사랑을 참 애절하게 묘사한 장면이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도 있다. 최후의 항쟁을 위해 전장으로 떠나는 알그렌에게 마지막으로 갑옷을 입혀주는 타카의 그것 말이다.
그 시퀸스를 눈앞에 떠올려 본다. 전장으로 떠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마지막으로 입혀주는 갑옷. 그 순간은 정(靜)과 동(動)의 부조화가 절묘하게 부딪친다.
애끓는 사랑의 심연. 누군들 눈물 쏟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므로 절제는 그 순간 고고한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무라이라도, 타카세 전투의 현장에서 비록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에라도 눈망울에는 그 사랑만이 슬프도록 안겨온다면…… 핏빛검선 위에 눈물 떨어뜨리며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적을 베는 게 사무라이라면 사랑의 미련은 왜 베지 못하나>
나는 손바닥에 턱을 괴고 창밖의 세계를 바라보며 장미원처럼 곱다시 안겨오는 사랑의 아려함에 대해 숙연히 미소 짓는다. 나도 모르게 만요슈의 와카 하나를 읊조린다. 순연한 세계가 눈앞에서 흘러간다.
“나그넷길을 떠나도 그리움은 여전하고
산 아래로 붉은 배 먼 바다로 노 저어 가는 모습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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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군님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