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일본의 목조 기술과 효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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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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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6년 (1873년)에 제작 된 일본 최대의 목조 수차 유적
무려 20세기 1955년 까지 현역으로 쓰였다.
현재 니라사키시 민속 자료관에서 전시 중이다.
절구 수 18개,
일일 처리 능력 10 가마를 자랑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센을 예로 들어줌
이게 절구다
동시대 조센징들이 인간 두명이 붙어서 하던 거를
일본은 수력을 이용해서
조센징 36명치 분 (절구 18개)를 운용했단 이야기다.
물론 인간은 체력의 한계가 있지만
수차는 지치지 않으니,
사실상 조센징 36명 이상의 몫을 했다고 봐야 타당하겠지 ?
베어링은 목재가 아닌 금속을 사용했다고 한다.
나무 톱니바퀴(기어)의 경이로움
자칭 농업 몰빵 국가였던 조선은 쌀 생산량에만 치중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얘기다.
탈곡, 제분, 도정 (쌀은 이 과정을 거쳐야 먹을수 있다) 등의 분야에서
지금과 변함없이 인간 갈아넣기 시전했던 조선과
동시대 일본의 효율 차이는 수십 : 1 혹은 그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전근대 일본의 탈곡
김홍도 그림에 묘사 된 조선의 탈곡
이하는 전근대 일본에서
목조 톱니바퀴를 이용한 다른 유적이다.
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복통을 치료했기로 유명한
에도시대 약재 판매점 旧和中散本舗에서 쓰인
약초를 찧거나 빻을때 쓰인 물건이다.
톱니바퀴를 응용한 맷돌인 것이다. 에도시대 전기 제작의 물건.
전근대 조선인의 이것의 일본 버젼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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