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일본 서민의 꿈, 에도시대 복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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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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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의 복권 풍경 (『萬々両札のつき留』)
일본의 복권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느냐고 말하면,
에도 시대 초기의 1624년경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셋쓰 국(현 오사카 부)에 있는 미노(미노 너)산 료앙지가 발상지라고 전해진다. ※여러가지 설이 있다.
"복권의 발상지"인 료안지의 복권의 모습은 『摂津名所図会 』 에 묘사되어 있다
당시의 복권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첫 참배에 내려온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쓴 나무패를 상자에 넣는다
2. 추첨 날의 1월 7일 스님이 나무패가 든 상자에 끝을 3회 찌른다(?)
3. 끝에 박힌 나무패에 이름이 적힌 3명이 "당선자"
이윽고 복권 상품을 금전으로 지급하며 "제비"로 불리며 인기 폭발
사행성 도박이 되자 막부가 몇번이나 금지령을 내렸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에도시대 중기 1730년 8 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는
사찰에 한정하여 복권을 허용하였는데
막부가 사찰에 한해 복권을 허용한데는 이유가 있다.
별명이 "망나니 장군"이었던 요시무네 막부는 대단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사찰의 수선 및 재건 등은 막부의 지원금으로 이루어졌었는데
사찰에서 복권을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수입을 창출하여 사찰유지비를 자기부담하게끔 만든 것이다.
복권을 사찰 한에 허용한뒤 막부는 사찰들에 대한 지원금을 줄였다.
이후 전국 각지의 사찰에서 "수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복권이 흥행하게 되었다.
구입한 복권 추첨권을 쥐고있는 여인
현대, 복권에 참여하려면 우선 판매 창구에서 복권을 구입하는 것처럼.
에도시대에도 비슷하게 "복권 추첨권(후다)"를 구입하였다.
복권 추첨권의 가격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복권 추첨권 1장이 2만엔에서 1만엔 정도였는데. 현재의 복권은 1장 300엔이니까
에도시대의 복권은 굉장히 비쌌다.
당시의 추첨권
가격이 비쌋기 때문에
에도시대 시민들은 여러사람이 돈을 모아 한 장의 추첨권을 공동 구매하기도 하였다.
당연하지만 이 때문에 야기 된 싸움도 많았다.
막부로부터 복권이 공인된 후
추첨 방법은 오늘날 초등학교 반장선거 제비뽑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먼저 저 상자에 추첨권들을 넣는다.
이후 저 송곳이 달려있는 막대기로 측면 혹은 상단에 있는 틈에 찔러넣는다.
개봉 후 송곳에 박힌 번호의 추첨권 주인이 당첨된 것이다.
열기 넘치는 추첨의 모습
그럼 1등의 금액은 얼마였을까
시대와 장소에 따라 금액은 달랐지만,
기록에 의한 1등 최고 금액은 천냥.
1냥을 8만엔으로 생각하면 약 8,000만엔
최하위의 4등에게는 약 4만 엔이 지급되었었다.
그러나 1등 상금 전액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첨 금액 중 약 1할이 개최한 사찰로
약 1할이 복권 추첨권을 판 가게에경비로 공제당했다,
실제 수령자가 받는 금액은 약 5,600만엔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