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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들이 김홍집에게 한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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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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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高宗)에 의해 동원된 보부상(褓負商) 등 수 천명의 군중이 김홍집(金弘集) 등을 處刑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日本軍은 김홍집(金弘集) 등을 호위했다. 유길준(兪吉濬), 조희연(趙羲淵), 장박(張博)은 日本 망명길에 올랐으나, 김홍집(金弘集)과 정병하(鄭秉夏)는 日本軍의 만류를 뿌리치고 거리로 나섰다가 붙잡혀 광화문 거리에서 비참하게 죽었다. 당시 駐韓 日本 공사관의 기록에 따르면 김홍집(金弘集)의 최후는 이랬다.



‘군중들은 김홍집을 난자(亂刺)하는 것도 모자라 시신의 다리에 새끼줄을 비끄러매고 종로(鍾路) 바닥을 쓸고 다니다가 ‘대역부도 죄인’(大逆不道 罪人)이라고 써 붙인 다음 다시 몽둥이로 때리고 발로 짓이기며 돌로 찍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황현(黃玹, 詩人, 1855~1910)의 매천야록(梅泉野錄)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朝鮮의 관헌들이 金弘集 總理大臣을 경무청의 문앞으로 끌어냈다. 관헌들은, 성난 군중들이 모여들어 입추(立錐)의 여지가 없음을 보자, 군중들을 뒤로 물러서게 한 다음, 칼을 뽑아 들고 總理大臣 金弘集을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 金弘集이 쓰러지자 경관 수 명이 칼을 들고 달려들어 일제히 가슴과 등을 난도질했다. 그리고 시체의 다리 부분을 거친 새끼 줄로 묶고 종로로 끌고 다니며 ‘大逆不道 金弘集’이라고 크게 쓴 장지를 붙였다. 그러자 길에 가득차 있던 보부상(褓負商)들이 시체를 향해 큰 돌을 던지고 발로 짓이겨 시체에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도록 만들었다.’

김홍집의 夫人(남양 홍씨)은, 아들을 죽이고 自殺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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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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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님의 댓글

  •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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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일차  경험있는자들을  다축여라고 지시한고종...그는 개혁의지 일도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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