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와 전하의 차이를 아시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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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군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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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모처럼 오신 분, 폐하(陛下)와 전하(殿下)의 차이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재미있어서 웃었습니다. 한자를 공부하시면 어휘력이 넓어지고 깊어져서 사고력이 풍부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력이 풍부해지면 사색을 할 수 있게 됩니다. 思索을 할 수 있는 人間은 品格을 갖추기 마련입니다. 품격이 있는 분은 省察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성숙됩니다. 그야말로 선순환이지요. 눈부신 日本人의 審美眼이 뛰어난 까닭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사실, 애초 품격이 없다면 도도한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시정잡배들이 그 단적인 예이지요.
품격을 갖춘 日本人들의 美意識은 그런 의미에서도 특히 자별납니다. 문화의 소양이 뛰어난 이들이 日本을 경탄하는 것이나 왜패니즈(Wapanese)들이 속출해지는 까닭은 뭐니 뭐니 해도 여타의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진의 아름다움이 日本에는 도도히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도 ‘반일오덕’이란 말이 생겼을까요^^
그런 日本人들의 미의식을 얘기하자면 날밤을 새겠지만, 그중에서도 靜中動의 깊은 추구가 유지군의 취향에는 특히 맞아떨어집니다. 기왕에 오셨으니 유지군의 언설을 한 번 들어보시지요. 이를테면 ‘소리(音)’말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작 중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있는데, 실제로 日本人들은 예로부터 자연의 소리마저 정중동의 경지에서 온몸으로 듣고자 했습니다. 그 자세는 지금도 변함없어요. 사찰의 종소리조차 그 여음이 깊을 정도이니까요.
사실 자연의 소리를 듣는다는 건 자연과의 일체가 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바람소리를 노래로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경지라는 건 정중동의 자세가 없으면 꿈도 꿀 수 없답니다. 예컨대 이런 것이에요. 헤이안시대의 가인이 읊조린 와카.
<가을이 오면 눈에는 선명하게 보이지 않지만
바람소리에 놀라게 된다>
그 여백의 여운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섬세한 감성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봄의 소리마저 체화하는 歌人의 노래가 가슴을 적셔 버리지요.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새의 소리 없이는
봄이 오는 것을 누가 알까>
휘파람새의 소리를 집 앞에서 듣는 것이 아닌, 먼 골짜기에서 아련히 듣게 되었을 때 봄을 실감한다는 건, 깊고 높은 감성이 없다면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이런 체현이 결국 품격의 토대가 됩니다. 그래서 독일의 건축자 브르노타우트(1880-1938)는 이렇게 日本人의 미의식을 파악했습니다.
<우리는 신비에도 비교할 수 있는 수수께끼 가운데 예술의 미는 단지 형태의 미가 아니라, 그 배후에 무한한 사상과 정신의 관련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득했다!>
하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 한자와 한글이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는 시각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문자를 놓고 무엇이 더 우수한지 考察하는 건 역시 본말이 전도된 행위가 아닐까요? 한자든 한글이든 무엇이든 자신의 어휘력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면 주저 없이 활용해, 자신의 품격을 높여 깊이 사색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언어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뭐 선택은 님의 몫입니다만.
요컨대 한자 운운한 님 또한 풍부한 어휘력으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營爲하시길 유지군은 소망한다는 겁니다. 또 놀러오십시오. 갑자기 도배하듯 여러 글을 올리는 건 게시판을 사용하는 분들께 폐가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시고요.
오늘은 날씨도 매우 추워요. 유지군은 저 멀리 현해탄 너머의 봄 소리를 들으려 귀를 쫑긋거리고 있답니다. 아름다운 새 봄을 기다리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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