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저출산은 조선시대 노예제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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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ㅇㅇ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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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개를 키우는 할머니들이 많았다. 개들의 발정 시기가 오면 자신들의 개를 동네에 데리고 나와서 그 개들이 서로 교배(접붙이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렸다.
그렇게 교배를 시킨 개의 암컷은 임신을 하게되고 두 달 뒤에 출산을 하게 되는데, 당연히 브리더 개념이 없었고 마구잡이로 교배를 시킨지라, 색깔이나 형태가 어떤 종의 규격에 들어가지 않는 잡종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나는 조선시대의 노비들의 결혼에서 어릴 적 그 경험이 번쩍하며 유비적인 어떤 연관성이 떠올랐다. 조선의 노비들은 원천적으로 배우자의 선택권이 없었고, 주인의 재산증식 의도에 따라 접붙이기를 당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의 노비들은 주인에 의해 끌려나와 정욕이 이끄는 대로 교미를 하던 개의 신세와 다름이 없었다. “허허 네 이놈 말쇠야 언년이랑 어여 혼인하거라” 이 같은 주인의 명령에 자아없는, 마치 개처럼 낑낑대며 교미를 하고, 축사 같은 집에서 애를 낳아 살다가, 애가 7~8세가 되면 다른 집에 노비로 팔리는, 그러한 경제구조를 가진 국가가 조선이었다.
김취, 텐구아레스, 나 같은 세대의 부모들은 연애 결혼보다는 중매결혼이 많았다. 우리 부모세대의 중매결혼은 무슨 귀족간의 혼사 같은 것과는 다르다. 앞서 말한 노비 대 노비의 접붙이기에 해당되는 것이다. 조선시대 노비의 후손이 지금 시대의 찐따-흙수저 라인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
80~90년대까지는 개 혹은 노비 ‘접붙이기’ 방식의 맞선, 중매로 노비의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자들도 결혼하고 애를 낳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부터 중매 결혼보다는 연애 결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열등한 개체들은 자연도태를 겪고 있는 중이다.
내 말이 틀린지 아닌지는 마트나 백화점에 가서 애 데리고 다니는 아버지들 봐라. 9할이 키 178cm 넘고, 외모도 정상 범주에 든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서는 과거에 이루어져야 했던 성선택, 자연도태가 현대의 한국사회에서 뒤늦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조선이란 국가가 극악의 폐쇄국가였고, 그 시대 노비 주인들이 무분별하게 번식시킨 결과라 하겠다. 비참한 노비의 멍에는 도태남, 도태녀의 유전자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있는 것이다. 신이시여 어째서 이렇게 가혹하고 비참한 숙명을 주셨습니까?
나는 뽀글이 파마한 노인네들이 키우던 바보 같은 개의 후손입니다.
나는 조선시대 말쇠, 언년이의 후손입니다.
나는 자아가 생겨버린, 혹은 영혼이 들어간 인형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결혼 못한 도태남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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